이재명 대통령 만든
화제의 애니메이션
TV광고 제작
01아이디어
01아이디어
윤수영·한승민 대표
취재·글 정현영 편집장
사진 송한돈
팡고TV촬영 유희래

2000년대를 주름잡던 독립광고대행사 ‘크리에이티브 에어 (이하 에어)’의 주역 윤수영(사진 오른쪽), 한승민(왼쪽) 대표가 ‘01(공일)아이디어’로 돌아왔다. 21대 대통령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진짜 대한민국으로, 대한민국이 뛴다’라는 애니메이션 선거 광고를 만들었다. TV 광고용이지만, 유튜브, 틱톡, 네이버 등 온라인에서 바이럴되면서 조회수 수백만 회가 훌쩍 넘어가는 기염을 토했다. 선거 영상으론 이례적인 수치다.
이번 영상이 에어의 윤수영, 한승민 대표가 제작한 게 알려지자 더욱 큰 관심을 받았다. 본인들은 이제 핫한 사람도 아닌데, 여기저기서 전화 받고 인터뷰까지 하게 되어 재밌다는 반응이다. 01아이디어의 두 대표를 만나 광고 제작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었다.
화제가 된 영상은 빠른 비트의 음악에 인물의 뛰는 장면만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슬로건 ‘이제부터 진짜 대한민국’을 녹여냈다. 뛴다, 또 뛴다, 넘어진다, 하지만 일어선다, 앞을 본다, 세계가, 주목, 주목, 주목, 어둠, 어둠, 어둠, 빛, 빛, 빛, 이제부터 더 멀리 뛴다, 더, 더, 더 높이 난다... 1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반복적이지만 점층식의 카피 문구를 통해 ‘한강의 기적’, ‘IMF 외환위기’, ‘IT 강국’, ‘K패션, K무비, K댄스, K컬쳐, K팝, K푸드’, ‘2024 비상계엄’, ‘K민주주의’ 등을 모두 담아냈다. 영상을 본 시민들의 댓글 반응은 ‘가슴 뭉클하다’, ‘눈물이 난다’, ‘전율이 느껴진다’, ‘멋있다’, ‘감각적이다’, ‘진짜 잘 만들었다’ 등 칭찬 일색이다. 광고를 만든 곳이 어딘지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번 대선은 대통령 파면 이후 치러진 만큼 60일이라는 짧은 선거 기간 동안 전방위적인 홍보가 진행되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홍보를 맡은 대행사의 시간도 급박하게 돌아가긴 마찬가지. 메인 대행사는 광고회사 ‘봄센’이다. 01아이디어는 봄센의 협력사로 참여해 TV 광고 영상 한 편을 제작했다. 윤수영, 한승민 대표의 첫 정치 광고다.



한승민 대표는 “35년 넘게 웬만한 브랜드와 품목은 다 경험해 봤지만, 정치 광고는 할 기회가 없었다”고 한다. 윤수영 대표도 마찬가지. 한 번쯤은 정치 광고를 해보고 싶다고 늘 생각해 오던 차에 뜻밖의 연락을 받았다. “이번 대선에서 임팩트 있는 TV 광고가 필요하다. 예전 노무현 대통령의 상록수 광고처럼 색다른. 도와달라.”라고 더불어민주당의 한웅현 홍보위원장으로부터 광고 의뢰를 받았다고 한다. 한 위원장은 광고대행사 출신이기도 하지만 LG전자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다. 비슷한 시기 중소 독립광고대행사였던 에어가 경쟁 PT에서 대형 인하우스 대행사를 제치고 LG전자의 신형 스마트폰 광고를 수주한 소식은 당시 큰 화제가 됐었다. 현대자동차그룹도 종합광고대행사 대신 직원 12명에 불과한 에어를 선택해 언론에 대서특필되며 눈길을 끌었었다. 독창성과 실험정신으로 무장한 에어의 당당함은 모두가 부러운 대상이었다. 한 위원장과 LG전자 그램 광고를 성공시켰던 인연, 새로운 대선 광고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의지가 윤수영, 한승민에게도 정치 광고를 해볼 기회를 만들어 주었고, 결국 이번 애니메이션 광고가 탄생했다.
“한웅현 위원장이 델리민주(더불어민주당 유튜브 채널)에서 1분 30초짜리 심플한 애니메이션 동영상을 보여줬어요. 계엄이 일어나서 국민 촛불과 응원 때문에 대통령 탄핵까지 될 수 있었던 것은 국민 여러분 덕분이라고 하는 감사의 메시지를 담은 짤막한 스토리였습니다. 그때 든 생각이 ‘애니메이션도 할 수 있는 모양이네’였어요.” 한 대표는 “정치광고들이 대부분 전형적”이라면서, “공익광고처럼 재미없거나 뻔한 기업 홍보형 광고 스타일이 아니라 임팩트 있고 눈에 띄는 것을 하고 싶었다”며, “애니메이션도 여러 개 안 중의 하나였다”고 밝혔다.
“애니메이션 형식을 택했던 이유는 후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예요. 6.25 전쟁 이후 폐허에서 벗어나 짧은 기간 동안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룩해 온 한강의 기적, 정부와 국민의 노력으로 위기를 극복한 1997년 IMF 외환위기 사태, 초고속 인터넷 강국 이룩 등 대한민국의 중요한 역사적 갈래들 속에서 많은 부침을 겪었지만, 후보 본인이 대통령이 되면 경제를 개혁해서 다시 한번 코리아가 세계 속에서 주도적으로 경제를 이끌고, 진짜 좋은 나라를 만들고 싶다는 거예요. 또, AI, 바이오, 콘텐츠 등 경제와 관련해 발표했던 ABCDEF 정책 공약과 K민주주의까지 스토리에 녹이고 싶다는 의지를 보여주셨는데, 사실 1분짜리 광고로 그런 서사를 표현하기 쉽지 않거든요. 그런데 애니메이션이면 가능하겠다 싶었던 거죠.”
한 대표는 아이데이션 후 곧바로 카피라이터인 윤수영 대표에게 카피를 써달라고 요청했고, 윤 대표는 다음 날 아침 바로 카피를 내놓았다. 그러자 시안 작업까지 이틀 만에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민주당이 내세운 ‘이제부터 진짜 대한민국’이라는 슬로건에 담아내야 할 메시지가 많고 어렵지만, 시안은 반대로 복잡하지 않고 쉽고 심플하게 만드는 게 핵심이었다.
“정치를 몰라도 그 시대를 살았기 때문에 공감이 됐어요. 또 계엄 이후에 모든 국민이 다 지켜 보고, 겪은 것이라서 오히려 메시지 전달이 쉬웠고요. 지난 겨울의 힘들었던 감정들을 되새기는 것보다는 기분 좋게, 희망차게, 그런 감정들을 느끼게 하고 싶었어요.” 윤 대표는 “멋있는 말, 센 말, 어떻게 해야지 식으로 가르치려는 말보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 그런 시절이 우리나라에 있었구나, 맞아! 그랬었지, 같은 공감을 통해 쉽게 정치 정보를 공유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라고 설명했다.


최종 결과물까지는 2주 남짓 걸렸다. 일반적인 광고 제작 프로세스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시간이다. 한 대표는 “워낙 시간이 촉박했다”며, “애니메이션 제작 프로세스는 잘 몰랐지만, 제작 기간을 최대한 당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 했고, 함께 일하는 이유진, 최보연 PD가 제작 스태프들과 함께 이를 해결했으며, 최대한 심플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자는 의도 때문에 가능했다.”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윤 대표는 “그림이 완성될 때까지 확인을 못 해서 답답했다”며 “촬영하는 게 아니라 컴퓨터로 작업하다 보니 일일이 수정할 수도 없고, 할 만한 시간도 안 됐다”고 덧붙였다.
영상이 온에어되고 두 사람은 당시에는 영상과 관련된 반응을 잘 몰랐다고 한다. 두 대표는 “댓글들을 보긴 했지만, 민주당에서 운영하는 채널이라서 지지자들이 써놓은 응원의 메시지로 생각했다”며, “나중에 (선거가 끝난 후) 우리가 만든 걸 알고 깜짝 놀랐고, 너무 좋았다는 전화를 광고계 후배들로부터 여럿 받고 나서야 알게 됐다”고 말했다. 영상에 대한 폭발적 반응은 두 번째 애니메이션 광고 ‘대한국민, 하나로 뛴다’편을 부랴부랴 만들어 선보이게 했다. 선거일을 불과 3일 앞둔 시점이었다. 갑작스러운 결정이지만 이렇게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오래 함께 해왔던 파트너십 덕이 아닐까.
윤 대표는 “에어 때부터 일을 굉장히 스피드하고 다르게 한다는 이야기를 주위에서 많이 들었다”면서, “신입사원부터 기획, 제작, 임원, 사장까지 같이 아이디어를 얘기하고 안이 채택되면 빨리 만들고, 부족하면 다시 하면 된다는 마인드로 일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방법이 핵심 아이디어를 지키면서 완성도 있게 신속히 진행하는 비결이라고 한다.
또, 한승민 대표와도 호흡이 잘 맞았다고 덧붙였다. “한 대표는 PT도 잘하고 크리에이티브도 잘 이해하는 AE였어요. 옛날에 일이 정말 많아서 바쁜 시절이었는데, 크리에이티브 안을 기획들에게 설명하고 이해시키고 리뷰 받고... 저는 그게 되게 힘들었거든요. 한 대표와 일하면 그런 부분이 커버되면서 로스를 줄이고, 시간도 절약돼서 좋았죠.”
윤 대표의 칭찬에 미소를 띤 한 대표가 이어 말했다. “둘이 싸운 적도 많아요. 옛날 에어 직원들한테 물어봐요, 우리 둘이 싸워서 회사 접는다는 소문이 매일 났었거든요. 그런데 저는 크리에이티브의 날이 선, 그 부분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해요. 에어가 지향했던 바죠. 광고회사의 무기는 크리에이티브한 캠페인이에요. 우리 둘 합이 왜 잘 맞았냐면 저는 윤 대표가 생각하는 아이디어를 클라이언트한테 ‘왜 그 브랜드에 필요한 솔루션인지’를 번역(?)해, (설득이 쉽지 않은데) 프레젠테이션을 해요. 제가 제작물까지 PT를 다 하거든요. 그러니까 윤 대표가 편한 거죠. 사실은 그런 부분에서 호흡이 잘 맞았던 거죠.”

두 사람은 1999년 제일기획에서 처음 만났다. 윤수영 대표가 오리콤에서 10년 넘게 근무하다 제일기획으로 이직한지 얼마 안 됐을 무렵이다. 이후 한 대표는 TBWA코리아로 옮기고, 윤 대표는 회사를 나가서 사무실을 차렸다. 그러다 한 대표의 제안으로 직원 7명을 모두 데리고 TBWA코리아로 들어가면서 다시 뭉치게 된다. 둘은 TBWA코리아에서 본격적으로 현대카드 런칭과 SK텔레콤 PT 등 함께 일을 가장 많이 했었다고 회상했다.
윤 대표 역시 (대행사들이) 너무 안 풀리거나 어려운 프로젝트를 만나게 되면 경험이 많으니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말과 함께 “일 없으면 회사 나와서 놀고, 후배들도 놀러 오면 술도 마시고, 그러다 긴 기다림 끝에 일이 생기면 일을 해보기도 하고, 그냥 그렇게 구성원들끼리 즐겁게 보내고 싶어요.”라고 바람을 전했다.


두 사람은 1999년 제일기획에서 처음 만났다. 윤수영 대표가 오리콤에서 10년 넘게 근무하다 제일기획으로 이직한지 얼마 안 됐을 무렵이다. 이후 한 대표는 TBWA코리아로 옮기고, 윤 대표는 회사를 나가서 사무실을 차렸다. 그러다 한 대표의 제안으로 직원 7명을 모두 데리고 TBWA코리아로 들어가면서 다시 뭉치게 된다. 둘은 TBWA코리아에서 본격적으로 현대카드 런칭과 SK텔레콤 PT 등 함께 일을 가장 많이 했었다고 회상했다.
광고업계에서 현업으로 오랫동안 일할 수 있는 비결을 물었다. “윤 대표하고 저하고 시간 남을 때 취미 삼아 하는 게 있어요. 인스타그램에 브랜드북이라는 계정(korea_brandbook)을 하나 운영했죠. 지금은 쉬고 있지만. 광고주가 컨펌하는 것도 아니니, 제가 폰으로 사진과 영상을 찍고 편집하면, 윤 대표는 카피를 쓰죠. 일주일에 두세 개씩 올렸더니 100개가 넘었어요. 그런데 팔로워수나 조회수는 저조해요.(웃음)” 그럼에도 한 대표는 하다 보니 재밌고, 편집 실력도 늘었다고 한다.
코리아 브랜드북 채널의 게시물은 누군가의 브이로그 같기도 하고, 말장난을 가장한 낙서장 같기도 하다. 또 추억을 끄집어낸 개인 일기장 같기도. 그러면서 게시물마다 제법 편집 스킬이 들어가서 마치 인쇄나 영상 광고 같은 느낌을 준다. 취미라고 하기엔 제법 공들인 티가 난다.
윤 대표는 카피의 감을 잃지 않기 위한 목적도 있다고 덧붙였다. “거창하게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일이 들어오면 예열이 돼야 해요. 카피를 너무 오래 안 쓰면 예열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거든요.” 예열이 곧 카피가 써질 때까지 계속 생
각하는 것이라는 설명도 이어졌다.
“옛날엔 선배들이 펜부터 잡지 말라고 했어요. 생각을 먼저 해야 글이 된다고. 그러니까 카피는 쓰는 게 아니라, 생각을 발견하는 거라는 거죠.” 그러면서 여전히 본인도 그러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또, 가르치듯 말하는 카피에 대해서도 주의를 기울일 것을 당부했다. 좋은 카피란 전하려는 메시지나 아이디어가 자연스럽고 글과 그림이 함께 생각나는 법이라는 말과 함께.
독립광고대행사의 표본이자 독보적인 위치에 있었던 에어라는 회사를 17년 넘게 운영했던 두 사람이 지금은 다른 대행사의 기획실 역할을 해주고, 조회수가 안나오는 브랜드북 채널을 운영하는 이유가 뭘까? 바로 두 사람 모두 아이디어를 내고 카피 쓰는 일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옛날에 저는 어디에 관심이 많았냐면요, 일을 오래 하고 싶었어요. 현업으로요. 일본의 산토리 ‘Old is New’라는 캠페인이 있어요. 오래된 광고인데, 제가 그 캠페인을 만든 스태프들을 보니까 CD, 감독, 카피라이터 모두가 50대더라고요. 저는 그때 30대였거든요. 그래서 나도 50대에도 저렇게 일하고 싶다고 생각했죠. 대행사에서 임원이 되면요, 광고주 접대가 많아요. 광고 일을 안 하죠. 40대에 들어서니까 회사에서 저한테 본부장을 맡기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저는 창업할 생각이라고 솔직히 말씀드렸죠.” 한승민 대표는 당시 TBWA코리아의 최창희 대표에게 본인이 먼저 회사를 차릴 계획을 밝혔고, 최 대표가 숟가락을 얹은 것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세간에는 최창희 대표가 직원들을 이끌고 TBWA코리아를 나와서 크리에이티브 에어를 설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지금도 일하는 게 재밌어요. 재밌는데 앞서 얘기한 것처럼 왕성하게 못해요. 기회가 없어요. 에어 때는 크리에이티브가 좋으면 광고주가 제 발로 찾아온다고 생각해서 광고 영업을 할 이유가 없었어요. 경쟁 PT에 초대도 많이 받았고요. 에어를 정리하게 된 것도 점점 그런 기회들이 줄어들어서였어요.” 사실 인하우스나 큰 규모의 회사가 아니면 대부분 기다리는 게 일이라고 한다.
한승민 대표는 나이가 들면서 점점 일할 기회들이 줄어드는 것에 아쉬워했다. “우리나라는 나이를 많이 따져요. 처음 만나면 나이부터 묻잖아요. 감독도 40대 후반이면 벌써 CD들이 불편해해요. 저나 윤 대표는 수많은 클라이언트와 브랜드 경험이 있어서 어려움을 만났을 때 헤쳐갈 수(방법)가 금방 보이거든요. 나이 상관없이 아이디어를 찾는 거라면 광고주나 대행사 어디든 저희를 찾아오면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윤 대표 역시 (대행사들이) 너무 안 풀리거나 어려운 프로젝트를 만나게 되면 경험이 많으니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말과 함께 “일 없으면 회사 나와서 놀고, 후배들도 놀러 오면 술도 마시고, 그러다 긴 기다림 끝에 일이 생기면 일을 해보기도 하고, 그냥 그렇게 구성원들끼리 즐겁게 보내고 싶어요.”라고 바람을 전했다.
뜨거운 열기로 가득한 여름, 한 시절 우리에게 큰 영감을 주었던 윤수영, 한승민 대표와의 인터뷰 시간이 한 시간 반을 훌쩍 넘어갔다. 이젠 일하듯 놀고, 놀 듯 일한다지만 분명한 건 이 두 사람은 이제껏 했던 것처럼 변함없이 광고인의 길을 갈 것이란 점이다. 아직 잊히기는 이르다. 그들의 크리에이티비티는 여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