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암투병기를 만화로 유쾌하고 긍정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사람이 몇명이나 있을까. 유서를 작성하면서도 묘비 문구는 공모전형식으로 선정해서 넣어달라니! 어떤 사람인지 궁금증이 더욱 커졌다. 암투병기뿐만아니라 리얼한 광고 감독의 일상을 보여주는 웹툰 '광고감독의 발암일기'는 평점 9.7로 작품성까지 인정받았다. 광고프로덕션 '엑스라지픽처스' 대표이자 웹툰 작가로 활동 중인 서준범 감독을 만났다.
‘광고감독의 발암일기’ 웹툰의 팬입니다. 최근에 단행본으로도 나왔는데, 처음에 어떻게 웹툰을 시작하게 되셨는지요?
제가 암 수술 후 병상에 누워있을 때，미련이 남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제 삶 자체가 도전의 연속이어서 크게 미련이 남을 만한 삶은 아니었지만，유독 간절히 바랐음에도 불구하고 못한 일이 바로 ‘웹툰’이었어요. 학창 시절에는 한국애니메이션고등학교 진학을 목표로 할 정도로 만화가가 꿈이었지만，그림 실력이 늘지 않아 한계에 부딪혔고, 대학 시절부터는 제가 쓴 시나리오를 웹툰으로 구현해 줄 그림 작가를 찾는 데에 많은 시간을 들였어요. 많은 분들과 미팅했고 진행될 삔한 적도 여러 차례 있었지만，제 의지와는 달리 제대로 완성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광고 감독을 하면서도 항상 미련이 남아 그림 작가를 구하곤 했는데， 이제는 그냥 스스로 능력 되는 만큼만이라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병실에서 바로 태블릿（펜마우스）을 주문하고，입원 중에 1 화를 그리기 시작했어요.
삶을 뒤돌아보니 가장 미련이 남았던 것이 웹툰이었네요. 마음을 먹고선 생각보다 쉽게 바로실천을 하신 거 같습니다. 시작하고 보니 어떠셨나요?
수술 후 2주 가까이 병원에 있으면서，밤낮으로 그림을 연습하고 퇴원하자마자 회사 복귀 후 틈틈이 1 화를 그려 업로드 했어요.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서 금세 더 많은 분들이 볼 수 있는 곳에연재할 수 있었어요. 그 이후로도 차폐실에 입원할 경우에도 노트북과 태블릿을 챙겨서 주1 회씩 꾸준히 연재했죠. 내용에 있어서는 제가 기억력이 많이 안 좋은 편이라 SNS에 올려뒀던 제 글과 사진을 참고해서 내용을 꾸미는편이에요. 사실을 기반한 웹툰인 만큼 주변 사람들의 증언을 많이 참고하고 있어요. 10화까지는 제가 글과 그림을 도맡아 하다가，엑스라지픽처스 회사 설립 후 일이 바빠져 그림 작가님을 별도로 구해서 그 이후로는 협업하고 있어요.
등장인물이나 스토리가 현실에 기반을 두고 있어서, 감독님의 웹툰 연재가 알려졌을 때, 주변반응이 남달랐을 것 같은데 어땠습니까?
사실 살면서 워낙 많은 일을 벌려왔던 터라，‘뭐 하나 또 하나보다.’ 정도의 반응이었어요. 그런데 점점 주변 인물들을 그리는 일들이 많아지자，은근히 본인들도 언젠가 웹툰에 나오지 않 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는 걸 많이 느껴지더라고요. 특히 친하게 지내는 광고대행사 분들이나 광고주분들이 일할 때마다 ‘저도 이제 곧 나오는 거 아니에요? 하하하’ 같은 반응이 많았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무엇인가요?
제가 아내의 생일이 들어 있는 숫자를 사진으로 찍어 모으는 습관이 있어요. 자동차 넘버라든지，전화번호라든지，아파트 동，호수라든지.그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내용이었는데，웹툰 말미에 실제로 제가 그동안 모아둔 사진들을 덧붙였어요. 그때 많은 분들이 방대한 사진에 경악(!)하셨던 것 같아요. 물론 감동이라고 하신 분들도 많았고요. 웹툰이어서 있을법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가 실제 사진을 보고는 많이들 놀라신 것 같더라고요. 하하. 연재 재개를 기다리고 있었는데，몰해 초에 웹툰 단행본 발간 소식을 듣게 되어 반가웠습니다. 또 그 단행본으로 좋은 일도 하신다고요? 단행본 발간은 좀 더 뜻깊은 일을 하고자 해서 진행한 게 컸어요. 웹툰을 연재하면서 암 환우분들이나 그의 가족 분들로부터 메시지를 많이 받았거든요. 그분들이 제 웹툰을 통해 위로를 받는다고 하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내가 작게나마 보탬이 된다면，조금 더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어보자’라고 생각하게 된 거죠. 그냥 기부하는 것도 좋지만，나만이 할 수 있고，나답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기부를 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사비로 책을 발간하고，병원에 책도 기부 했어요. 수익금 역시 전액 갑상선암센터에 전달할 예정입니다. 부디 이 책을 필요로 하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감독님께서 이끄시는 액스라지픽처스는 웹툰의 배경이기도 한데, 어떤 곳인가요?
광고/영상프로덕션 엑스라지픽처스는 재미있는 광고를 만드는 회사에요. 구성원 전부가 영화감독을 지망하는 만큼，매년 자체적으로 단편영화 시나리오 공모전도 진행하고，작년에는 광고뿐만 아니라 광고회사를 배경으로 한 웹시트콤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를 제작하기도 했어요. 시트콤만큼이나 왁자지낄하고 노는거 좋아하는，일 잘하는 회사입니다.
광고제작사의 구성원 전원이 영화감독을 지망한다고요?
네，그래서 저희 회사 작품은 ‘내러티브’가 강점이에요. 저희가 만든 광고를 보고 감동적이어서 눈물을 흘렸다는 분들도 많고，작정하고 웃고자 만든 광고의 경우에는 온에어한 지 1 년이 지금도 열심히 커뮤니티에서 다시 회자되기도 하거든요. 그만큼 엑스라지픽처스가 만드는 내러티브는 감동과 재미를 넘나든다고 자랑하고 싶네요.
웹툰 속에서 비처지는 회사 분위기도 ‘이런 곳 에 다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재미있고 즐거워 보였어요. 실제 어떤가요?
엑스라지픽처스라는 회사 자체 강점이 바로 ‘즐거움’입니다. 흔히 이쪽 업계에 일하는 모습을 떠올리면 야근에 찌들고，아이디어가 안 나와서 고뇌하는 그림들을 떠올리기 쉽지만，저희 회사는 다릅니다. 언제나 칼퇴근이고，야근이나 주말근무도 없고, 회식도 자유롭습니다.아무튼 다들 잘 놀아요. 너무 놀아서 요즘엔 하루에 2시간씩만 놀자고 선언하기도 했거든요.그래도 일은 잘됩니다. 가끔(?) 빵빵 터지는 광고가 나오거든요.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즐겁게살고 싶어요.
빵빵 터지는 광고가 많던데요? 감독님께서 꼽는 대표 작품 몇 가지 소개해주세요.
유튜브 2019인기광고영상 4위에 올랐던，투머치토커 박찬호의 ‘형이 왜 거기서 나와? ’KCC광고가유명해요. 덕분에 광고주 미팅 시에저를 소개하는 분들 대다수가 '박찬호 광고 만든 사람’이라고 소개하시기도 해요. 그전까지 ‘이마트 광고 만든 사람’이라고 불렸는데，언젠가 또다시 박찬호 광고를 덮을 만한 광고를 만들고 싶어요. 또，작년 말 온에어한 유튜브 인터랙티브 광고, KB국민카드 ‘존박의 하루’도 소개해드리고 싶은데요. 유튜브 인터랙티브 시스템을 활용한 게임 같은 광고에요. 총 14개의 영상，6개의 엔딩으로 구성된 이 광고는，네티즌의 선택에 따라서 다른 내용，다른 결말이 펼쳐져요. 영상에따라 러닝타임도 1분부터 16분까지 다양해서，당시 이슈가 됐었죠. 스킵 못하고 광고 보다가 원래 뭘 보려던지 까먹었다는 베스트 댓글이 기억에 남네요.
평소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으시는지 궁금합니다.
주로 제작하는 유튜브 바이럴광고의 경우，트렌드와 밈에 민감하기 때문에，온라인 커뮤니티를 열심히 모니터하는 편이에요. 그리고 유년시절 어머니께서 과정을 통해 나온 대사들이에요.
요즘 디지털 광고가 대세잖아요. 그러면서 바이럴 광고도 많아지고… 그런 캠페인 사례들을보면서 광고주가 직점 컨택하는 경우가 늘고있다고 하는데, 어떤가요?
저희 역시도 10건 중 8?9건은 광고주와 직접 진행하고，1 ?2건 정도만 대행사와 진행하고 있
어요. 영상 이외의 프로젝트를 병행해서 진행하는 경우는 대행사를 통해 연락을 주는 것 같고, 영상광고만 진행할 경우에는 많은 광고주들이 기존에 저희가 만든 광고를 보고 직접 연락을 주는 편이에요. 저희 역시 조금이나마 저희 회사에 관심과 팬심을 갖고 계신 광고주들 과 일하는 것이 수월하고，아무래도 다이렉트 의사소통이 가능해서인지 그에 따른 성과도 더 좋은 편인 것 같아요.
광고，웹시트콤에 이어 또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분야가있나요?
저희는 항상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고자 해요. 최근에 내부에서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나와서 스릴러 코미디 장르의 숏폼 콘텐츠를 기획 개발 중에 있어요. 동시에 독립장편영화도 기획중이에요. 저희의 최종 목표는 내러티브가 필요한 모든 영상에 엑스라지픽처스가 함께하는 것이거든요. 광고뿐만 아니라 영화，콘텐츠 등 다양한 영역에서도 ‘엑스라지픽처스’라는 이름을 알릴 수 있길 고대하고 있습니다.
올해 감독님께서 생각하시고 계신 목표나 계획이 있다면요?
개인적인 제 목표는… 다이어트에요. 감독으로서는 올해 안에 광고가 아닌 콘텐츠 하나를 선보이는 게 엑스라지픽처스의 목표고요. 저뿐만 아니라 구성원 개개인도 광고 이외의 연출작을 만들기 위해 틈틈이 노력하고 있어요. 엑스라지픽처스의 행보를 지켜봐주세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