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의리를 고집하는 광고 스타
박철민 배우 sol531531@hanmail.net
15년 전, 4000만 국민이 내가 배우라는 것을 완벽하게 모를 때, 완전 무명일 때, 어떤 광고 관계자가 내 연극, ‘대한민국 김철식’을 보고 휴대폰 광고를 제의해 왔다.
아마 ‘저렴한 배우’를 찾고 있었던 것일 게다.
나는 감격해 OK를 외쳤고, 너무나도 쉽게 내가 하는 걸로 결정됐다. 호주에 가서 찍었다.
첫번째 광고인데 해외에서! 으하하하하하. 설렘과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주위에 계속 흘리면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63빌딩만한 파도와 싸우다 조난돼 휴대폰으로 구조 요청을 하고 다행히 목숨을 구한다는 내용이었다.
지금 같으면 당연히 CG처리를 했겠지만, 당시엔 실제로 파도 속에서 자일로 안전장치를 하고 찍는, 정말이지 무식한 상황이었다.
진짜 그렇게 찍었다. 하지만 난 광고 모델이 됐다는 흥분 속에서 당당하고 자신있게, 무모하게, 걱정 한 번 하지 않고, 응했다.
차라리 스태프들이 더 불안해했다.
안전장치를 여러번 확인한 후 나는 바위에 붙어서 파도를 기다리고 있었고, 드디어 스태프 중 누군가가 “큰 파도가 옵니다~”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지금 생각해도 참 원시적인 상황이다).
순간이었다. 뭔가 형용할 수 없는 엄청난 힘에 바위를 놓쳤고, 그 무서운 파도는 자일까지 끊어버렸다.
파도가 지나가자 내가 있어야 될 곳에는 끊어진 자일만 있었고 모든 스태프들은 경악 중이었다.
그들 모두가 ‘사라졌구나, 죽었구나’를 떠올리고 있을 때, 저기 파도 끝자락 바위틈에서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된(약간의 과장을 실어) 내가 살려달라고 외치고 있었다.
안전요원들이 겨우 구조를 했고, 나는 죽음과 삶 사이에 양쪽 다리를 걸쳐 놓고 엉엉 울고 있었다.
모든 스태프들은 안도의 환호성을 질렀지만 난 광고 스타고 뭐고 다 이별할 생각이었다.
그 때부터 나는 촬영을 포기했고 웬만한 장면은 대역이 하기 시작했다. 충분히 내가 할 수 있는 장면도 난 충분히 할 수 없었다.
촬영 내내 넋은 나가 있었고, 나간 넋은 돌아 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헬기를 타고 무사히 구조되는 마지막 씬 역시 대역이 훌륭하게 찍었고, 그 순간에도 난 내 첫 딸 귀란이를 못 볼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넋을 찾을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일주일 만에 서울에 돌아왔고, 넋을 찾은 나는 가족과 주위 친구들에게 무용담이 된 촬영 이야기를 침 튀겨가며 떠들어댔다.
그러나 그 광고는 광고주의 거부로 방송되지 못했고, 방송 못한 광고는 개런티가 반으로 떨어진다는, ‘전설의 고향’ 처녀귀신보다 더 무서운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나는 또 넋이 나갔다. 다시 나간 넋은 더 오랫동안 나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넋을 잃어버린 암울한 무명배우 생활이 계속되었다.
얼마 후 내 넋을 찾아준 것 역시 그 광고였다.
아주 많이, 엄청 다행히, 극장광고로 걸리게 되었고, 그렇게라도 방영되면 개런티가 다 나온다는 거였다.
넋을 찾은 나는 더 신나게 까불어댔고, 계속된 무명생활이었지만 나 혼자만은 무명이 아니었다. 광고 스타였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그리고 난 아직도 그 때 그 회사의 휴대폰만을 끝까지 고집해 쓰고 있다.
정말이지 난 의리 있는 광고 모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