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다. 아프리카에서 무용한 시간을 보내던 다섯 살의 나. 가끔 케냐에 살았었다는 얘기가 나오면 듣는 말은 비슷하다. “아프리카에서 살기 안 힘들었어요? 엄청 덥잖아요. 막 사파리 같은 데서 살았어요? 집 나가면 사자 있어요? 아프리카 말 안 어려워요?”
내 기억 속 케냐 나이로비는 서울의 여름처럼 덥지 않았고 사람들은 도시에, 동물들은 사파리에 따로 잘 살았으며 말이 안 통해도 불편함은 없었다.
케냐에서 처음 유치원을 다녔다. 학생의 반은 인도와 파키스탄 사람, 나머지는 유럽 여기저기서 온 사람, 선생님은 영국 사람이었다. 한국인은 나밖에 없다고 기억했는데 엄마 말로는 한 명 더 있었다고 한다. 너무 어려서 그곳이 낯선 땅이라는 생각도 못했던 것 같다. 유치원의 모든 아이들과 선생님들은 계속 말을 주고받고, 나에게 뭐라고 말하는데 전혀 못 알아들었다. 누군가 나에게 말을 하면 멀뚱멀뚱 쳐다봤고 누군가 손짓발짓으로 내가 해야 할 것을 하게끔 해줬다.
선생님이 종이와 크레파스를 주면 뭔가 그리고 점심시간이 되면 식당으로 우르르 향하는 아이들을 따라가 밥을 먹었다. 아이들이 운동장에 나가면 따라나가 뛰어놀았다. 유치원이 끝나면 데리러 온 엄마와 집에 갔다. 언어로 소통하지 않아도 문제가 없었다. 사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됐다. 무용한 시간을 보내도 됐다.
출처 Peponi House Preparatory School facebook
유치원이 끝나고 어떤 영국인 할머니 집에 들러 영어 과외를 받았다. “에이, 비, 씨, 디” 알파벳을 따라 읽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과외에서 배운 것으로 내가 그들의 언어를 알아듣게 된 것 같지 않다. 유치원 선생님과 아이들이 내뱉는 말들이 소음으로만 들렸는데, 어느 날 그 소음 중 한 어절이 귀에 똑똑히 들렸다. 또래 친구가 나를 툭툭 치며 말했다. “팔로우미” 무슨 의미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유치원에서 그 어절을 하루 종일 되뇌며 입에 물고 있었다. “팔로우미, 팔로우미, 팔로우미” 집에 가서 엄마한테 물었다. “엄마, 팔로우미가 뭐야?” 엄마는 나를 따라오라는 뜻이라고 했다.
그날 이후로 유치원 아이들이 하는 말이 더 이상 소음이 아니고 의미 있는 말로 들렸다. 나도 그들과 말을 주고받게 됐다(당시 친구들과 선생님과 나눴던 대화들이 지금은 한국말로 기억나는 건 왜일까?).
그 시절 나를 풍요롭게 만든 건 방과 후 영어 과외보다, 유치원에서 멍 때리며 보낸 어쩌면 무용한 시간들인 것 같다. 무용한 시간들을 통과하며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축적되는 잡다한 것들도 제 나름 쓸모가 된다. 우리가 보낸 무용한 시간이 종종 아무것도 한 게 없고 한심하게 느껴지거나 스스로 조급하게 만들지 않길 바라며, 당신에겐 무용한 나만의 기억을 주절주절 떠들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