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지털 사회의 급격한 변화에 따라 현대미술의 이미지 역시 TV와 컴퓨터가 추구하던 동영상(전자 이미지)의 가치를 훨씬 뛰어넘고 있다. 즉, 이미지가 일방향으로 생산, 수용되던 방식에서 이제는 SNS(Social Networking Service)의 소통 방식처럼 네트워크 안의 참여자가 이미지의 생산자, 소비자라는 1인 2역을 담당하며 불특정 다수와 상호 교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특성은 과거 문자문화 시대의 ‘전문가’ 개념이 변환된다는 점이다. 디지털 사회에서 ‘전문가’라는 것은 자신의 전문 영역 내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수행할 때에는 ‘창조자’로서의 권한을 갖지만, 전문가의 역할을 떠나게 되면 그 역시 대중의 일원으로 머물러야 한다. 이러한 화자(話者)와 청자(聽者)의 민주화는 그동안 규정되어온 창작자와 수용자의 상관관계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으로 변화되어간다.

망형 네트워크의 속성을 반영한 예술은 특히 미디어를 기반으로 하는 상호작용적 매체예술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전시 공간에 미디어 환경을 만들어 관람자의 적극적인 참여를 요구하는 이 작품들은 예술가 고유의 특권인 예술 창조 능력을 ‘관람자’에게 나누어주며 자신만의 무대를 관객에게 개방한다. 다시 말해, 관객의 행위가 없으면 작품은 ‘완성할 수도 경험할 수도 없게’ 된다. 때문에 오늘날 인터랙티브 예술작품을 통해 관람객은 미디어를 ‘만드는 인간(Homo Faber)’에서 미디어를 가지고 ‘노는 인간(Homo Ludens)’으로 변화하고 있다.
관객의 신체 체험으로 예술을 완성해가는 미디어아트
미디어의 상호작용을 기반으로 하는 인터랙티브 아트의 대부는 제프리 쇼(Jeffrey Shaw)와 골란 레빈(Golan Levin)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호주의 미디어아티스트 제프리 쇼는 디지털 사회가 본격화되기 훨씬 전부터 상호대화적 작품을 전개해온 인물이다. 그는 1989년 전시 공간에 합성이미지와 자전거를 설치한 작품 <읽을 수 있는 도시 (Legible City)>를 통해 관람자와 교류하는 방법을 실험했다. 이 작품은 관람자를 수동적 입장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게임센터의 각종 라이드물(자동차나 모터사이클)처럼 자전거 위에 앉아 직접 페달을 밟고 핸들을 움직이도록 요구했다. 이때 자전거를 타는 행위는 컴퓨터 그래픽에 의해 실시간으로 처리되어 거대한 스크린 속에서 여러 문자, 또는 도시 사이를 달려가는 행위로 연결되었다. 즉, 관람자의 움직임과 작가가 제작한 작품의 시스템이 결합, 상호 작용하면서 작품 자체를 변형시킨 것이다. <읽을 수 있는 도시> 작품은 초기 버전 이후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자전거를 타고 가상의 도시를 탐험할 수 있게 하거나 장소를 세계 여러 도시로 확대하는 등 새 기술을 적용해가며 계속해서 새로운 버전을 만들고 있다.


예술가이자 작곡가, 엔지니어인 골란 레빈의 경우, 인터랙티브한 시청각적 표현을 위해 새로운 환경을 창조해오고 있다.
그는 비언어적 소통을 가능케 하는 새로운 디지털 환경에 주목하며, 사람들이 쉽게 배우고 조작할 수 있는 멀티미디어적 ‘시스템’을 디자인한다. 방문자들이 그래픽과 소리의 요소를 가지고 실험할 수 있도록 제작된 <오디오비주얼 인바이런먼트 스위트(Audiovisual Environment Suite)>, 오디오 비주얼 퍼포먼스인 <스크리블(Scribble)>(2000)과 관중의 모바일폰을 이용한 콘서트 <다이얼톤즈(Dialtones)>(2001>, 그리고 확장현실감(augmented reality)을 이용한 <리마크 앤 더 히든 월즈 오브 노이즈 앤 보이스(Remark and the Hidden Worlds of Noise and Voice)>(2002)에 이르기까지, 추상적인 애니메이션과 합성사운드, 퍼포먼스를 동시에 결합하는 방법으로 사람들과 기계와의 관계, 추상적 커뮤니케이션과 상호작용성의 교차점을 탐험하며, ‘내’가 타인과 상호작용하는 방법을 시각화해 보여준다.
이러한 제프리 쇼와 골란 레빈의 실험에서 알 수 있듯 디지털미디어 시대에서의 예술작품은 주체(생산자)로서의 작가, 타자(수용자)로서의 관람자, 그리고 매체를 통합하고 그것을 즐기고 향유하는 사람들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중시한다.
따라서 그러한 미디어아트들은 최근 특정 공간 또는 미술관에 머무르지 않고 밖으로 뛰쳐나와 공공장소에서 예술을 맞을 준비가 된, 혹은 준비되지 않은 불특정 관객을 대상으로 예술적 교감을 시도하고 있다.
도시민과 호흡하는 뉴미디어아티스트
공공장소에서 실현되는 미디어아트들은 대부분 도시의 빌딩 외벽에 프로젝터로 영상을 투사하는 방법을 많이 사용한다. 그러나 단순히 ‘보기 좋은’ 이미지를 건물 파사드에 보여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건축물 앞을 지나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감지, 반응하면서 시시각각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거나, 작품 앞에 조정 장치를 두어 사람들이 직접 이미지를 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일례로 파리에서 활동하는 뉴미디어아티스트 미구엘 슈발리에(Miguel Chevalier)는 세계 각국의 여러 도시에 대중과 교감하는 공공미술을 설치한다. 약 30년 전부터 컴퓨터를 이용해 작업해온 그는 디지털시대에서 대량의 정보를 많은 사람이 빠르게 공유하는 지점을 추적한다. 대표작으로는 정보사회 속 보이지 않는 관계를 가시화한 <메타시티> 시리즈, 모로코 시내에 지도를 픽셀화한 영상과 이슬람문화 특유의 문양이 반복된 패턴을 장식한 풍선 등을 설치하여 이슬람 문화의 전통과 역사를 현대적인 방법으로 보여주는 대규모 프로젝트 <디지털 아라 베스크> 등이 있다. 이 중 가상세계에서 13개의 홀씨가 꽃이 되고 소멸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초자연>과 근작 <프랙탈 플라워> 작품은 감상자와의 상호작용을 전제로 한다. 움직임을 감지하도록 프로그램화된 작품은 사람의 행동에 따라 거대한 꽃들이 정중히 인사하고 개화하는 등 매번 다른 장면을 만들어내며 도시민의 역동성을 반영한다.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활동하는 미디어아티스트 미하엘 비엘리키(Michael Bielicky) 역시 건물을 캔버스 삼아 인터랙티브 아트를 구사하는 작가이다. 그의 작업 시스템은 주로 관객의 동작을 3D 픽셀로 재구성한 후, 즉각 스크린에 영사해 실제 시간과 가상공간을 아우르는 여행으로 안내하거나,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재앙과 관련된 뉴스를 실시간으로 전송해 문자를 픽토그램으로 전환해 건물에 투사하는 식이다. 예를 들어 네트워크 인스톨레이션 <The Garden of Error and Decay>(2010-2011)는 실재와 가상, 지각과 경험의 관계를 시각화 테크놀로지 데이터로 실험하는 작품이다. 이 설치물은 반복되는 주요 뉴스와 같은 새로운 산업 콘텐츠를 계속해서 추가하며, 구글(google) 뉴스와 같은 미디어, 트위터 등에서 얻은 정보의 패턴을 다이내믹한 픽토그램 언어로 번역한다. 다른 작품 <Columbus 2.0>(2008)은 온라인, 실시간 뉴스를 시각화해 실재 공간에 파도가 치는 듯한 환영을 만드는 항법 장치이다. 이것은 프로젝션과 항해 장치(배의 조타, 스티어링핸들)를 사용해, 관람자가 벽면에 상영된 이미지를 핸들로 마음껏 조정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를 통해 작가는 사람들이 정보의 바다를 항해하며, 오늘날 정보의 급격한 증가를 대면하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