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inthe(압생트), 마주(魔酒)에 얽힌 오해와 진실
HSAd커뮤니케이션, 2009년, 01-02월, 217호 기사입력 2009.02.13 03:52 조회 23567
‘압생트(Absinthe)’는 19세기부터 20세기 초엽까지 프랑스에서 유행했던 술이다. 영롱한 에메랄드 빛 녹색이 특징적인 이 술은 ‘녹색 요정’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단순히 그 빛깔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 술을 마시면 녹색 요정 즉 ‘헛것이 보이는’ 환각체험을 한다는 믿음 때문이기도 했다. 프랑스의 알제리 지배가 무르익어가던 1840년대, 프랑스 정부는 자국의 파견부대를 말라리아와 이질로부터 지키기 위해 ‘약술’ 압생트를 치료예방약으로 배급했다. 군인들이 바로 19세기 중반의 압생트 붐을 주도한 세력이 되었다. 이 압생트에 신비한 매력을 부여한 것은 당시 파리로 몰려들던 ‘보헤미안’이라고 불리던 가난한 예술가 집단. 서민들과 마찬가지로 금전적인 이유로 압생트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들은 노래와 그림으로 이 술의 매력을 찬미했다. 그렇게 이들이 압생트에 부여한 낭만은 돈 많은 부르주아들까지 이 서민 술로 끌어들였고, 19세기 중후반 포도원 병충해 덕분에 발생한 와인 부족 사태까지 겹치면서 압생트는 프랑스의 국민 주류로 자리 잡게 된다.



압생트는 '아니스(Anise)·페넬(Fennel)·쓴 쑥(Wormwood)'이라는 세 가지 허브를 빻아 넣은 알코올을 증류시켜 만드는 술이다. 이렇게 증류시켜 나오는 압생트는 무색투명한 상태로 보통 ‘흰 압생트(Blanche)’ 혹은 ‘푸른 압생트(Bleue)’라고 부르는데, 이것을 초록색으로 착색한 것이 우리가 흔히 아는 압생트, 정확히는 ‘초록 압생트(Verte)’이다. 싸구려 압생트는 인공색소나 향신료를 이용해 착색하지만 좋은 압생트는 허브 등의 천연재료를 이용해 착색착향한다. 이 단계에서 어떤 허브의 배합을 이용하는가가 각 메이커만의 특징이자 매력이다.

압생트를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는 음주 시에 벌어지는 ‘압생티아나’라고 불리는 유별난 의식이다. 정량이 표시된 전용 잔의 일정 부분까지 압생트를 따르고, 그 위에 바닥이 뚫려있는 전용 스푼을 걸쳐 놓는다. 스푼 위에 각설탕을 올리고 차가운 물을 서너 방울 떨어뜨려 각설탕에 스며들게 하면 각설탕이 천천히 녹아서 스푼의 구멍을 통해 압생트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설탕이 거의 다 녹아떨어질 무렵에 남아 있는 설탕을 씻어내듯이 찬 물을 서서히 가는 물줄기로 따르면 투명한 녹색이던 액체가 차가운 물과 반응해서 탁한 젖빛의 흰 액체로 변한다.

찬물과 반응해서 희게 변하는 압생트 고유의 ‘루쉬(Louche)’라는 이 현상은 단순히 시각적 효과를 넘어서 압생트 안에 잠들어 있는 여러 가지 복잡한 향을 깨우는 효과가 있다. 즉 물의 첨가량에 따라 활성화되는 향의 종류가 달라 천차만별의 맛을 낼 수 있다는 의미다. 보통 압생트와 물을 1:5의 비율로 섞어서 마시기 때문에 병에 담겨 있는 압생트는 도수 70%에 가까운 독주지만 실제는 12%와인 정도의 순한 상태로 음용된다.



술의 이름이 ‘쓴 쑥’의 학명인 ‘아르테미시아 압신티움(Artemisia Absinthium)’에서 유래되었듯, 쓴 쑥은 압생트의 맛과 향을 규정하는 중요한 재료다. 그런데 이 쓴 쑥에 함유된 튜존(Thujone)이라는 물질은 압생트에게 ‘악마의 음료’라는 오명을 부여하는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튜존은 일종의 신경 독으로, 과다하게 투여되면 발작을 일으키다 사망하게 되는 물질인데, 치사량은 담배에 들어있는 니코틴 정도라고 알려져 있다. 20세기 초에는 환각물질이라고 오해를 받기도 했으나 현재는 그런 고마운(?) 효과는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1860년대, 마냥(Magnan)이라는 의사는 쥐를 대상으로 (압생트가 아닌) 순수한 튜존을 투여하는 실험을 통해 쥐들이 발작을 일으키며 죽어가는 모습이 관찰되자, 튜존이 들어간 압생트는 보통 술과는 다르게 발작과 사망을 일으키는 위험한 술이라는, 말도 안 되는 결론을 이끌어낸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위험한 술’이라는 딱지를 오명이라기보다는 일종의 ‘타나토스(Thanatos)적인 낭만’으로 받아들였음이 분명하다. 그 결과는 압생트의 판매를 저해하기는커녕 오히려 신비주의와 매력만을 배가시키는 역할을 했다.

그러던 와중, 1905년 스위스에서 압생트 두 잔을 마신 농부가 자신의 가족을 몰살시킨 사건이 일어나자 (농부가 압생트를 마시기 전 이미 몇 리터의 포도주를 마셨다는 사실이나 원래 알코올중독자였다는 사실은 간과된 채) ‘악마의 술’ 압생트가 발작, 환각을 일으킨다는 유사과학적(Pseudo-scientific) 주장이 변호 측의 논거로 인용되었고, 이는 센세이셔널리즘을 좋아하던 언론에 의해 유럽전역에 떠벌려지기 시작했다. 혹자는 보헤미안 문화에 대해 눈살을 찌푸리던 기존 세력들과 압생트의 약진을 두려워했던 와인업자들의 영향력이 있었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결국 이 스캔들은 유럽 전역의 압생트 판금조치로 연결되었고, 압생트는 발작과 광기를 불러일으키는 ‘독극물’이라는 오명을 쓰고 사람들의 생활에서 사라져버린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연구가 거듭되면서 압생트에 들어있는 튜존의 양은 발작을 일으키거나 사망에 이르게 하기에는 턱없이 적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적어도 자기 체중만큼 앉은 자리에서 마셔야 튜존의 효과가 발현한다는 말이다.

판매금지 이후에 벌어진 연구들이 압생트를 둘러싼 낭설들을 타파하면서 압생트는 다시 유럽과 미주시장에서 판매를 인정받았고, 특이한 풍미의 기호품으로 다시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흔히 우리나라에서 압생트는 마약류로 분류된다는 낭설이 있는데, 이 이야기도 문자 그대로 낭설 되겠다. 압생트나 문제의 물질인 튜존이 특별히 법적으로 마약류로 지정되어 있지는 않다. 다만 식약청에서 편찬한 ‘식품공전’에 따르면 압생트의 재료인 쓴 쑥이 식품에 첨가해서는 안 되는 유해물질로 분류되어 있어 생산과 판매가 금지되어 있을 뿐이라서, 좀 과장해서 표현하면 마약류가 아닌 독극물(?)로 분류되어 있는 셈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더 자세한 내용은 정성욱 부장의 블로그(http://lanugo.egloos.com)에서...


 

 정성욱 | 영상사업팀 PD / swchung@hsad.co.kr
호기심 때문에 죽은 고양이 영혼에 빙의되어 있습니다.
주류 ·   ·  와인 ·  압생트 ·  프랑스 ·  영화삽입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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