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팩트 있는
키 컷(Key Cut)
광고를 완성하는
시작과 끝
시작과 끝
돌고래유괴단 김현준 감독
취재·글 송한돈 | 사진 유희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단 하나의 장면이 있는가? 인상을 남기는 키 컷(Key Cut) 하나만 있다면, 연출은 그저 숨을 불어넣는 일에 불과하다는 감독이 있다. 클리셰를 부수는 돌고래유괴단의 김현준 감독이 그 주인공이다. 데뷔작인 컴투스 서머너즈워 광고를 시작으로 맘스터치, KB Pay, 캐논, 지베르니(GIVERNY), 캐리버스(Carrieverse), 와키윌리, 베리시(Verish)의 광고를 연출했다. 시나리오 작성부터 광고 제작의 전 과정에 김 감독의 손길이 거치지 않은 곳이 없다. 더 좋은 시나리오가 좋은 작품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기에, 자는 시간을 뺀 모든 시간을 이 과정에 몰두한다. 정식으로 광고를 배우지 않았지만, 매번 새로운 광고를 세상에 내놓는 김 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Q. 광고를 하기 전, 어떤 삶을 살았나?
스무살부터 미술학원에서 4년간 아이들을 가르쳤던 광고와는 무관한 삶을 살았다. 어렵게 입학한 대학교의 수업은 재미가 없었고 자연스레 전공과는 멀어져 있었다. 졸업을 앞두고 동기들이 회사에 취직을 하기 시작하자 ‘내가 지금 하고 싶은 것이 뭘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으로 꿈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당시 머물 곳이 없어 1평 남짓한 학원 탕비실에서 생활할 때,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와 쿠엔틴 타란티노의 ‘킬빌’을 보고 어떤 생경함을 느꼈다. 그 후, 복수 전공을 시작해서 6개월 만에 영화과 수업을 듣게 됐고, 바로 첫 영화이자 자퇴작이 되어 버린 '인류의 영원한 테마'라는 단편 영화를 만들었다. 내 마음대로 찍을 수 있다는 특권 하나로 완성한 나의 첫 결과물 덕분에 여러 영화제도 경험하고 그중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상도 받으면서 기술적으로 투박 하더라도 좋은 이야기라면 어디든 통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Q. 광고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을 때는 언제인가?
2015년 대학교 후배 영화의 조감독을 맡았는데, 그 현장에서 우석 선배(신우석 대표)를 만났다. 당시 후배는 돌고래유괴단의 프리랜서 조감독이었고 아마 후배도 첫연출이라 전반적인 상황을 도와주기 위해 우석 선배가 현장에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찰나의 만남이 있었고, 시간이 흘러 어느 날 우석 선배에게 전화가 왔다. 유니클로 감탄 팬츠 프로젝트에 조감독을 맡아줄 수 있냐는 말에 망설임 없이 승낙했다. 후배가 나중에 말하길 내 첫영화를 우석 선배에게 보여줬고, 그 후에 연락이 닿은 것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프로젝트는 그해 겨울에 시작해 이듬해 봄에서야 끝났다. 프로젝트가 끝난 후 우석 선배와 짧은 대화를 나눴는데, 우석 선배가 광고를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재밌지만 어렵다고 답했다. 시나리오를 쓰는 것부터 짧은 시간 안에 퀄리티를 뽑아내는 것까지 모두 나에겐 어려웠다. 하지만 재미있었던 기억이 더 컸고 우석 선배가 있는 돌고래유괴단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감독이란 ‘꿈’이 더 선명해졌고, 그렇게 선배들에게 광고를 배우기 시작했다.
Q. 돌고래유괴단이 감독으로 성장하는데 어떤 도움이 됐나?
감독으로 성장하는 데 있어 거의 전부였다. 사실 지금도 기존 광고업계의 시스템이나 직책, 용어를 모두 알지 못할 정도로 문외한이다. 그런 나를 성장시킨 건 ‘PT데이’라는 시스템 덕분이다. PT데이는 쉽게 말해 브랜드를 던져주고 2시간 안에 기획안을 내서 아이디어를 발표하는 자리다. 문제는 당시 하루에 오전·오후 두 번, 많으면 아침·점심·저녁 세 번을 해야 한다는 것. 치열하게 준비해야 했고 무지하게 깨지며 성장했다. PT데이는 단순 아이디어 기획 발표가 아니라 광고, 넓게는 영상 자체를 학습할 수 있는 교육이기도 하다. 축구에 비유하자면 매일 빠짐없이 드리블, 패스 그리고 연습경기를 뛰며 필드의 유기적인 흐름을 알 수 있도록 훈련하는 것이다.
Q. ‘PT데이’가 본인을 얼마나 바꿨다고 생각하나?
한때는 일상이었고, 없던 습관마저 생겼을 정도? 쟁쟁한 선배 감독들 앞에서 내 아이디어를 발표하는 자리인 만큼 매서운 피드백을 받는다. 끝나고 나면 ‘왜 이렇게 밖에 못 했을까?’라고 반추 하는게 일상이었다.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드니까 ‘이렇게 해봐야겠다’라는 생각을 메모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메모조차 하지 않았던 내가 180도 바뀐 것이다. 메모 방식 또한 점차 달라졌다. 두서없이 메모하기보다 언제든 사용할 수 있게끔 깔끔하게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생각의 폭은 넓어졌고, 자연스럽게 좋은 아이디어를 선택하는 안목도 생겼다. 그에 따라 시나리오의 결은 보다 풍성하게 뻗어나가며 작업에 대한 자신감도 커졌다. PT데이를 통해 광고 문법을 배우고 나만의 개성을 자리 잡을 수 있게 됐다. 웃긴말일지 몰라도, 어쩌면 돌고래유괴단의 PT데이에는 희노애락이 담겨 있다.
Q. 시나리오 작성 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선, 무작정 쓰지 않으려고 한다. 가장 임팩트 있고 생경함을 선사하는 장면인 ‘키 컷(Key Cut)’을 먼저 상상한다. 그 이후 시나리오의 앞, 뒤 줄기를 뻗어나가는 편이다. 반대로 시나리오 첫 단부터 빌드업해 키 컷이 되는 장면을 위해 써 내려갈 때도 있다. 중요한 건 아이디어에 대한 깊은 고민이 먼저고 그를 뒷받침한 텍스트는 나중에 해도 늦지 않다는 점이다. 그리고 스스로 키 컷이 될 수 있는지 끝까지 의심하고 의심한다. 끊임없는 의심 끝에 나온 머릿속 이미지 하나가 ‘설득력’ 이 생긴다면 그것이 바로 텍스트로 옮길 만한 키 컷이지 않을까. 나의 아이디어에 설득력이 있다면,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첫걸음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점차 단단한 시나리오를 절대 타협하지 않고 완성시키려고 한다.
Q. 키 컷이 어떻게 작품 제작에 반영되나?
데뷔작인 컴투스 게임 ‘서머너즈 워’ 광고를 예로 들자면, ‘서머너즈 워’는 말 그대로 소환사들의 전쟁으로 ‘소환한다’, ‘싸운다’라는 키워드를 통해 무엇을 소환해 누구와 싸우는지를 정하는것이 핵심이라고 치자. 지옥문을 지키는 삼두견 ‘케르베로스’에 맞설 사람으로 반려견 훈련사 강형욱을 등장시킨다면, 험악한 케르베로스는 그저 머리 셋 달린 강아지에 불과해, 꼬리를 내리게 되지 않을까로 뻗어나갔고, 이 장면이 ‘서머너즈 워’ 시나리오의 키 컷이 됐다. 최근에는 여성 속옷 브랜드 베리시(Verish)의 브랜드 필름을 연출했는데, ‘여성들에게 당연시되는 불편함’에서 해방되는 이야기를 만들고자 ‘자유’라는 키워드를 뽑았다. 키 컷으로 ‘한강에서 도시를 바라보는 인어 공주’로 잡았고, 인어공주역의 정호연 배우가 한강이 아닌 하늘을 유영하면서 클리셰에 갇힌 '공주들을 재해석한' 현대여성들의 불편함을 깨부수는 내러티브를 담았다.
Q. 광고 제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 좋은 이야기가 있다면 그 힘은 끝까지 간다. 멋있게만 찍는 것보다는 좋은 이야기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이다. 그렇게 선배들에게 영향을 받았고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까. 연출은 결국 이야기에 ‘숨’을 불어 넣는 것이다. 그래서 좋은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기획력, 그리고 누군가의 뇌리에 박히는 생경한 장면을 구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타협하지 말자. 타협하는 그 순간, 바로 현장 종료다.
Q. 앞으로 어떤 작품을 연출하고 싶은가?
시간이 좀 걸릴 수도 있겠지만,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좋은 작품을 연출하려 한다. 물론 판단은 대중들의 몫이지만 말이다. 앞서 말했듯 생경한 이야기, 생경한 장면을 연출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려고 노력할 것임에 분명하고, 장르는 상관없다. 나의 노력이 담긴 작품이 시간이 지나도 회자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