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글로벌 경제 움직이는 힘 가졌다…
남은 과제는 확장과 융합
세계 1위 광고회사 WPP의 주역이자
'광고계 전설' 마틴 소렐 경 방한 인터뷰
글 김수경 기자 | 브랜드브리프

한국은 내수 규모는 작지만 글로벌 경제를 움직이는 힘을 가진 매우 독특한 나라입니다. 이름만 대면 모두가 아는 글로벌 브랜드를 여럿 보유하고 있고 기술 수준도 높을 뿐만 아니라, K팝과 K푸드, K뷰티 등 문화적으로도 강한 이점을 갖추고 있죠. 이 흥미로운 기회의 영역들을 해외로 확장 시키고 문화적으로 융합하는 것이 한국 기업들의 최대 과제입니다.
세계 1위 광고회사 WPP의 성공을 이끈 주역이자 글로벌 광고업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마틴 소렐 경(Sir Martin Sorrell)이 최근 2박 3일 간의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방한 기간 국내 주요 광고주 및 기업의 고위 임원진 및 최고 마케팅 책임자(CMO)들과 만나 해외 시장 진출 및 확장과 관련한 얘기를 나누며 국내 기업들의 고민과 도전 과제를 함께 논의했다.
브랜드브리프는 마틴 소렐 경이 지난 2018년 창립한 S4 캐피털(S4 Capital) 산하 디지털 에이전시 몽크스 서울(Monks Seoul) 사무실에서 그를 직접 만나 한국 기업들이 마주한 기회와 디지털 시대 광고회사의 역할에 대한 심도있는 대화를 나눴다.
한국, 경제 규모는 작지만 글로벌 기업, 혁신 기술, K 컬처 등 풍부한 이점 갖춰
마틴 소렐 경은 글로벌에서 한국 시장만이 갖는 독특한 영향력에 주목했다. 그는 “삼성과 현대자동차, 기아, LG, CJ 등 대기업들이 해외에서 큰 성공을 거두면서 해외 진출의 문을 활짝 열었고, 기술 수준도 높을뿐더러 최근에는 K팝, K푸드, K뷰티, K패션 등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 받으며 문화적으로도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며 “내수 경제 규모도 작고 언어적, 문화적으로도 큰 장벽이 있지만, 글로벌 경제를 움직이는 풍부한 이점을 갖춘 독특한 시장”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미 K컬처는 충분한 차별화를 이뤘고 특히 K팝과 K엔터테인먼트 분야의 인기를 십분 활용한 아웃바운드(해외 진출) 기회가 엄청날 것”이라며 “하지만 이번에 만난 대부분의 한국 기업들이 해외 시장 확장에 대해서는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마케팅적 관점에서) K컬처의 인기를 기업의 비즈니스와 연결시켜 확장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큰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술 발전으로 지리적 장벽은 희미해졌을지 모르지만, 여전히 언어적·문화적 장벽은 존재한다”며 “강력한 한국의 문화를 글로벌 문화와 융합시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도전 과제다. 그러한 고민 해결을 돕는 것이 몽크스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디지털이 바꾼 광고 시장 환경, 新 모델로 정면돌파
마틴 소렐 경은 33년간 몸담았던 WPP에서 떠나 2018년 S4 캐피털을 설립했다.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면서 광고 환경이 급변했고, 7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전통적인 광고 지주회사 모델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에 완전히 다른 유형의 혁신적인 조직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전통 광고회사 모델을 혁신한 디지털·데이터 기반의 광고회사를 꾸린 것이다.
마틴 소렐 경은 “지난해 글로벌 광고 시장 규모는 약 1조 달러(한화 약 1378조5000억원)로, 디지털 비중이 70%를 넘어섰다. 디지털 광고는 계속해서 성장하는 반면, 전통 광고는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알파벳(구글), 메타, 아마존, 틱톡 등 대형 테크 플랫폼이 전체 광고 시장의 50%, 디지털 광고 시장의 70%를 차지하는 등 광고 시장 구조 또한 완전히 변화했다”며 “디지털 기술, 특히 AI(인공지능)의 등장은 광고 시장을 영구적으로 변화 시켰고, 여기에 미·중 관세 전쟁,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가자전쟁 등 지정학적 불확실성까지 겹치면서 광고 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몽크스는 이러한 시대가 필요로 하는 완전히 새로운 광고회사 모델을 선보였고 현재 알파벳, 애플, 아마존, 디즈니, 티모바일, 넷플릭스, 워너브라더스 디스커버리, 프록터앤갬블(P&G), 유니레버, GM 등과 밀접한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며 “현재 몽크스 비즈니스의 70%가 북미와 남미, 20%가 유럽, 10%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이뤄지고 있는데 이를 각각 60%, 20%, 20%로 맞추는 것이 목표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한국 시장을 주목하는 이유”라고 역설했다.
순수 디지털(purely digital), 데이터 중심의 크리에이티브와 콘텐츠(data-driven creative and content), 더 빠르고 더 나은 품질로 더 저렴하게(faster, better, cheaper), 단일 브랜드(single P&L, 단일 손익계산서)라는 4가지 원칙을 내세운 ‘몽크스’는 현재 33개 국가에서 53개 사무실을 운영하며 7,000명의 임직원을 둔 대형 네트워크로 성장했고, 과거 세계 1위 광고 지주회사를 진두지휘했던 마틴 소렐 경은 현재 80세의 나이에 또 한 번 광고 역사에 새롭게 쓰일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AI 시대, 새로운 에이전시의 확장성 증명하는 것이 최종 목표
마틴 소렐 경은 “1930년대 유명한 경제학자인 존 메이너드 케인즈는 미래에 자동화로 인해 인류가 일하는 시간이 상당히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현재 AI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업계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보면 그야말로 선견지명이었다는 생각이 든다”며 “광고 업계는 AI의 등장으로 인력과 시간, 비용을 모두 획기적으로 줄이고 있다. 고용 규모가 줄어드는 것은 위기일 수 있으나, 개인화와 효율화 측면에서는 큰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특히 개인화 영역에서는 기회의 폭발이 일어날 것이다. 넷플릭스나 카카오를 예로 들면, 전 세계적으로 개인 맞춤형 서비스가 가능해질 경우 더욱 큰 규모의 비즈니스로 확장될 것”이라며 “또한 예전에는 광고나 마케팅 전략을 짜고 집행하기까지 수개월이 소요됐다면, AI를 활용함으로써 비용 효율화와 조직 효율화를 극대화 할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이렇듯 AI가 인간의 많은 부분을 대체하게 된 시대, 그가 새롭게 만든 광고회사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을까. 이에 대해 마틴 소렐 경은 “디지털 퍼스트, 데이터 중심, 비용 효율적, 단일 브랜드 전략을 내세운 몽크스는 효율적이면서도 새로운 디지털 시대의 광고회사”라며 “시대의 흐름과 변화에 맞춘 신규 에이전시 모델이 AI 시대에도 확장적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몽크스의 최종 목표이자, 나를 여전히 업계 최전선에서 일하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AI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브랜드와 크리에이티비티의 본질을 짚었다. 그는 “좋은 브랜드, 좋은 크리에이티비티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민첩성과 유연함”이라며 “고객들의 심리적, 물리적 속성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정치적·사회적 변화에 맞춰 제품과 서비스에 고객의 니즈를 잘 반영하는 것은 여전히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마틴 소렐 경은 이 혼란스러운 AI 시대를 살아가는 광고인과 마케터들에게 “코딩을 배우고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워라”는 역설적인 조언을 건넸다.
그는 “AI가 다 해주기 때문에 필요없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런 때일수록 코딩을 배우고 중국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등 (비즈니스를 펼치고자 하는)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우라는 얘길 꼭 해주고 싶다”며 “기술을 제대로 이해하고 한 국가의 지리적, 문화적, 언어적 상황을 이해하는 것은 AI가 결코 대신 해줄 수 없는 일이다. 이해의 힘이야말로 AI시대에 꼭 필요한 핵심 능력”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마틴 소렐 경은 1985년 당시 100만 파운드(한화 약 18억 6,500만원) 규모였던 WPP를 세계 1위 광고 및 마케팅 서비스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그가 퇴임하던 날, WPP의 시가총액은 160억 파운드(약 30조원)를 돌파했다. WPP 이전에는 9년 동안 사치 & 사치 컴퍼니 Plc(Saatchi & Saatchi Company Plc)에서 그룹 재무 이사(Group Financial Director)로 재직한 바 있다.
마틴 소렐 경은 오는 6월 16일부터 20일까지 프랑스 칸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최고 크리에이티비티 페스티벌 칸 라이언즈(Cannes Lions International Festival of Creativity) 무대에 연사로 올라‘Transforming Creativity and Unlocking Brand Agility with AI-Powered Video(AI 기반 영상으로 크리에이티비티를 변환하고 브랜드 민첩성 실현하기)’를 주제로 강연을 펼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