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박윤진(CR6팀차장)
그날 밤, 몇 개의 아이디어는 서서히 살해되었고 새벽녘 기적적으로 회생했다. 회의실 탁자에는 동료의 날선 혀끝에 난도질된 아이디어 몇 개가 여린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고, 그 주변엔 빛도 보지 못한 채 죽어간 아이디어의 핏빛 원혼이 어지럽게 쓰러져 있었다.
재깍재깍, 둥 둥 둥, 다시 찾아온 아이데이션의 공포. 초침 소리는 커지고 심장 박동은 빨라진다. 크리에이터에게 가장 큰 공포는 아이디어 없는 아이디어 회의. 지금 이 순간도 죽이는 아이디어 찾기에 골몰해 있는 당신을 위해, 뜨거워진 머리를 싸늘하게 식혀줄 몇 편의 광고를 소개한다. 감각과 이성의 냉혹한 서스펜스는 지금부터다. 잃어버린 아이디어를 찾아서.
광고1 : 니콘S60 - 호텔 편, 숲 편
찍은 얼굴은 한 명이지만 찍힌 얼굴은 한 명이 아닐 수도 있다? 수학 여행을 다녀오면 꼭 한 번쯤 학교를 들썩이게 하던 심령 사진 논란! 얼굴은 있는데 다리는 없는 행인, 희미하게 남은 낯선 이의 얼굴.
새로운 ‘여고괴담’은 계속 생산되어 업데이트되고 있다. 유로 RSCG 싱가포르(Euro RSCG Singapore)는 ‘얼굴 우선 인식’이라는 카메라의 새로운 기능을 이렇듯 살벌한 아이디어로 풀어냈다.
혼자가 아니라고 느끼는가? 지금 셔터를 눌러보라. 한번에 12개의 얼굴까지 탐지해주는 신기능이 당신 곁에 숨은 누군가를 찾아낼지도 모른다
광고2 : 타이드(Tide) - 초상화 편
공포 영화를 즐기지 않는 사람도 다 아는 공포 영화의 공식이란 게 있다. 음침한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급작스러운 음향 효과와 함께 튀어나오는 ‘무언가!’는 꼭 동료나 친구, 그렇게 방심할 때를 기다렸다는 듯 등장하는 게 바로 귀신이나 살인마다. 공포의 전설이 된 〈전설의 고향〉 속 귀신도 마찬가지다.
늘 낮은 곳으로 임하는 푸른 혹은 붉은 조명은 백지장 같은 그녀들의 얼굴에 괴기스러움을 더하게 마련. 레오 버넷 시드니(Leo Burnet, Sydney)는 타이드의 깨끗하다 못해 눈부신 표백 효과를 공포물의 한 장면처럼 표현했다. 겁나게 새하얀 옷에 놀라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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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3 : 이블 데드(Evil Dead) - 헤어스프레이 편, 맘마미아 편
왜 공포 영화에는 유독 아이들이 많이 나올까? 공포감을 극대화할 수 있는 순수함의 상징이기 때문이 아닐까? 사치앤사치 토론토(Saatchi & Saatchi, Toronto)는 전통적인 뮤지컬 속 순수함의 페르소나에 공포를 덧입히는 아이디어를 창조했다.
뮤지컬 〈헤어스프레이〉의 트레이시가 피를 토하고,〈맘마미아〉 소피의 웨딩드레스가 핏빛으로 물들 것만 같은 호러 뮤지컬 <이블 데드>. 당신이 사랑하는 뮤지컬로 다시 태어난 <이블 데드>의 무시무시한 즐거움을 누리라고 광고는 이야기한다.
광고4 : 올드 네이비(Old Navy) - 황혼에서 책상까지
숲 속 야영을 즐기는 한 무리의 젊은이들. 캠프파이어가 무르익는 가운데 그들을 지켜보는 누군가가 있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한 사람, 어둠 속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 비명을 지른다. 그곳에 서 있는 건 다름 아닌 책걸상! 무서운 속도로 쫓아가는 책걸상. 공포에 질려 넘어진 학생, 그때 그녀의 얼굴 위로 뜨는 카피 하나. ‘School is coming’. 미국 학생들이 즐겨 입는 올드 네이비의 광고다.
공포 영화 〈황혼에서 새벽까지(From dusk till dawn)〉를 패러디해 공포의 배경을 교실 책상으로 바꾸었다. 패션을 사랑하는 학생들에게 등교보다 두려운 건 입을 옷이 없는 등교날일지 모른다고 레오 버넷 런던(Leo Burnet, London)도 생각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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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 글을 다 읽은 지금까지도 어디에서 아이디어를 찾아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하고 있는가? 코카콜라 시리즈로 유명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프라슨 조시(Prasoon Joshi)가 그 고민에 답을 전한다. ‘Ideas choose you’. 아이디어가 나를 선택한다니, 끝을 알 수 없는 아이데이션의 공포에 질린 당신에게 이 말은 따뜻한 독려처럼 들리지 않는가?
지금도 수많은 아이디어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끊임없이 배우고 생각하고 경험하는 당신을 긍휼히 여길 때쯤 그들은 소리 없이 강림하사 은혜를 베풀어줄 것이다. 오늘 밤도 수많은 자료를 곱씹으며 영감을 찾아 헤매는 당신의 뒤로 무언가 존재감이 느껴진다면 재빨리 뒤돌아보라. 소름 끼치도록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당신을 찾아왔을지도 모르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