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션 ‘요조’의 청춘 에세이: 시래기 볶음을 만들다가 친구의 바다에 놀러가기
HS Ad 기사입력 2020.07.27 12:00 조회 307
 
 
종종 아침 조깅을 마친 후 땀에 흠뻑 젖은 채로 장을 본다. 무척 허기진 상태에서 하는 음식 쇼핑이기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많은 양을 산다든지 평소라면 사지 않을 먹거리를 산다든지 하는 부작용이 있지만 이대로 먹을 게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집에 돌아갈 수는 없으니 어쩔 수 없다.
 
얼마 전 아침에는 조깅을 마치고 장을 보다가 뜬금없이 시래기를 샀다. 물속에 담겨있는 시래기를 보다가 김치 볶음처럼 시래기를 볶아서 흰 밥에 얹어 먹는 장면이 갑자기 떠올랐기 때문이다. 
 
시래기는 처음 사보는 것이었다. 사장님이 얼마치 줄까, 하고 여쭤보시는데 얼마에 얼만큼이나 주실는지 알 길이 없어서 그냥 큰 어른 주먹만큼 달라고 하고 달랑달랑 들고 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서둘러 쌀부터 씻어서 밥통에 넣고 취사 버튼을 눌러 놓고는 스마트폰을 찾았다. 
 
‘시래기 볶음 만드는 법'이라고 검색창에 입력하면서 내심 물을 쪽 짠 다음에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된장이랑 들기름이랑 깨랑 청양고추랑 그런 거 넣고 달달 볶으면 되겠지 뭐, 라고 생각했다. 
 
일단 30분 정도 시래기를 푹 끓인 다음...... 뭐?
 
시래기가 충분히 식으면 일일이 겉껍질을 벗겨낸 뒤....... 뭐라고??
 
분명 이 블로그의 주인이 유난스러운 깍쟁이인 것일 테다. 나는 다른 블로그를 이것저것 클릭해 들어가 보았다. 다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일단 푹 끓인 다음에 껍질을 벗겨야 한단다.
 
지금 내가 사 온 시래기는 그냥 물에 불린 시래기일까 한 번 삶은 시래기일까... 껍질까지 벗겨낸 시래기일까 벗겨내지 않은 시래기일까... 난생처음 시래기를 사본 시래기 초보는 알 도리가 없었다. 일단 블로그에서 시키는 대로 처음부터 따라 해보아야 하려나. 배고파 죽겠는데 어느 세월에 30분을 삶아낸 다음에 식힌 다음에 껍질을 벗겨낸 다음에 볶아낸 다음에 먹어야 하나. 그냥 다 집어치우고 라면이나 끓여 먹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순순히 냄비에 시래기를 넣고 물을 부었다. 삶아질 동안 후딱 씻고 오려던 계획도 실패했다. 물이 끓자 냄비 속 시래기가 자꾸만 넘쳤기 때문이다. 가지가지 했다. 인덕션 앞에 서서 30분 동안 냄비를 들었다 놨다 온도를 낮췄다 올렸다 하며 시래기를 삶는 사이 온 방 안에는 한증막 냄새 같은 것이 차올랐다. 잠이 오는 냄새였다. 이제 겨우 1단계를 마쳤을 뿐인데 시래기 볶음이고 뭐고 그냥 이대로 누워 한소끔 자다 일어나고 싶었다. 배도 더이상 고프지 않았다.
 
 
껍질을 벗기면서는 옛날 생각이 났다. 엄마가 해주는 반찬은 뭐든지 잘 먹었지만, 그중에서도 고구마 줄기 볶음은 내가 게 눈을 감추듯이 먹는 것이었다. 보통 주방 일을 나에게 시키는 법이 없는 엄마가 하루는 손이 모자랐는지 부탁을 해왔다. 
 
“수진이 지금 안 바쁘면은 고구마 줄기 껍질 좀 벗겨줄래?”
 
오, 엄마가 고구마 줄기 볶음을 해 주려나 보다! 
 
한밤중에 목이 말라 냉장고 문을 열었다가 고등어를 발견하고 행복해진 김창완 아저씨처럼 나는 신이 나서 방을 뛰쳐나갔다.
 
“원래 이렇게 껍질을 벗겨서 먹는 거였어?”
 
내가 묻자, 엄마는 ‘이렇게 껍질을 벗겨야 안 질기거든’ 하면서 대충 껍질 벗기는 법을 알려주곤 다른 요리를 하러 주방으로 사라졌다.
 
나는 거실에 앉아 티비를 일없이 슬쩍슬쩍 보면서 엄마가 가져다 놓은 고구마 줄기 껍질을 하나하나 벗기기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아직도 벗겨야 할 고구마 줄기가 소복한데 나는 허리도 아프고 눈도 아프고 손가락도 아팠다. 매번 엄마는 일일이 껍질을 벗겨서 만들어 주셨던 거구나. 이만큼 소복한 줄기 껍질을 벗겨 요리를 마치면 겨우 타파 반찬통 하나 만한 양이 나오는 거구나. 먹느라 바빠서 그런 줄도 몰랐구나 나는. 
 
나는 벌떡 일어나 부엌으로 가서 엄마에게 울상으로 외쳤다.
 
“엄마! 나 이 반찬이 이렇게 고생스럽게 만들어지는지 몰랐잖아! 괜히 너무 미안해!”
 
엄마는 큰 소리로 웃었다.
 
“내 새끼, 마트 가면 껍질 벗긴 고구마 줄기 다 판단다. 엄마는 그냥 한가하니까 이렇게 안 다듬어진 거 사는 거야. 이게 더 싸기도 하고. 엄마가 사서 하는 고생이야, 괜찮아.”
 
고구마 줄기만 껍질을 벗기는 건 줄 알았더니만 시래기도 껍질을 벗겨야 하는 거구나. 또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 나물들이 많이 있겠지, 그래서 나물 요리가 힘들다는 말도 나온 거겠지.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나는 선 채로 시래기 줄기의 껍질을 묵묵히 벗겨냈다.
 
밍키를 뜬금없이 떠올린 것은 그때였다.
 
‘지금... 밍키 전시 중이지 않던가?’
 
내가 밍키라고 부르는 민준기 작가의 전시는 다행히 아직 끝나기 전이었다.
 
“지금 무슨 반찬을 하나 만들다가 밍키가 전시 중이라는 사실이 생각났습니다...” 
 
나는 시래기 껍질을 벗기다 말고 밍키에게 문자를 보냈다. 대체 무슨 반찬이냐는 그의 답장에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시래기 볶음이 뜬금없이 먹고 싶어서 처음 시래기라는 것을 사보았는데 30분을 삶고 그러고 나서는 껍질도 벗겨야 했다고. 그래서 껍질을 무한 반복으로 벗기다가 버특 밍키 생각이 났다고.
 
절묘하다, 라고 답장이 왔다.
 
 
민준기의 작품은 한지를 찢어서 만든다. 멀리서 얼핏 보면 독특한 사진 같기도, 투명한 수채화 같기도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한지를 일일이 찢어 붙여 재구성한 작품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나물 줄기의 껍질을 벗기다가 한지를 찢는 밍키를 떠올려내다니 나도 잠깐씩은 영특하고 웃긴 것 같다. 나는 만들던 반찬을 마저 만들고 전시를 보러 가겠다고 말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수분을 말려버리겠다는 듯 태양이 괴물처럼 작열했다. 뫼르소가 생각나는 날이었다. 강한 빛 때문에 눈을 계속 슬그머니 떠서 그런지 택시기사님이 분명 갤러리 근처에 내려 주셨는데도 갤러리를 잘 못 찾았다. 주변을 헤맸다. 잠깐 헤맸는데도 일사병에 걸리는 줄 알았다.
 
 
차가운 콘크리트 벽에 걸린 파란 작품들을 보자 얼음물을 몇 모금 벌컥벌컥 마신 것처럼 살 것 같았다. 바다가 가득했다. 한지라는 텍스쳐 때문인지 민준기의 작품들은 언제나 포근하고 따뜻한 느낌이었는데 이번 전시는 포근하면서도 청량하고 차가웠다. 바다 위 윤슬은 정말로 눈이 부셔서 바깥에서 그랬던 것처럼 또 눈이 게슴츠레해지는 것 같았다. 작은 갤러리 안을 연거푸 동그랗게 돌면서 나는 그가 만들어낸 바닷가를 거닐었다. 
 
 
완성된 시래기 볶음은 마치 휴지 뭉치를 물에 흠뻑 적셨다가 다시 꼭 짜낸 뒤 손으로 뜯어먹는 것 같은 식감을 냈다. 그래도 먹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이 요리 덕에 하마터면 못 볼 뻔했던 친구의 바다에 다녀올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만들어 보길 잘했다. 다음엔 더 맛있게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잊고 있었던 소중한 약속이 또 떠오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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