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 스시,
청담동 미식가를 점령하다
최근 들어 국내에도 일본 문화를 직·간접으로 경험한 세대들이 성장하
며 홍대뿐 아니라 강남 전역에서 일본의 음식 문화가 크게 성장하고 있
다. 농담처럼 여겨질지 모르나 특히 스시의 경우 만화 <미스터 초밥왕>을
보며 스시의 종류와 그 장인 정신에 몰두했던 세대의 열화와 같은 지지가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한마디로 흑백의 만화 지면에서 오도
로(참치 뱃살 부위)와 샤리(초밥) 쥐는 법 등의 섬세하고 전문적인 세계를
접한 세대들이 직접 일본에서 스시를 배워 전문 요리사가 되거나, 청담동
을 중심으로 한 강남 지역에 무섭게 들어서고 있는 고급 스시야의 주 고
객으로 성장했을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일본 문화에 거부감이 없는 세대의 등장과 함께 미식은 즐기되, 비만은 죄악인 세태도 한몫했다. 미국의 패스트푸드는 말할 것도 없이 비교적 건강한 식단이라 여겨지는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음식도 기본적으로 육식 스테이크와 같은 지방이 많이 섞인 음식이 메인으로 나오다 보니 비만과 관련된 걱정을 완벽하게 덜어주지는 못한다. 고급 레스토랑이라 해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일본의 전통 문화를 세계로 수출하는 오랜 노력 끝에 가장 일본적이면서도 세계적인 스시가 그 대안으로 떠오른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반가울 수밖에 없는 스시 전문점 전성 시대 국내에서 특급 호텔을 제외한 고급 스시야의 출발은, 우리나라의 초밥왕이라고 불리는 신라호텔 출신의 안효주 셰프가 ‘스시효’를 강남에 오픈하면서부터라고 봐도 무방하다. 현재 국내 고급 스시집을 굳이 분류하자면, 모든 면에서 가장 정점에 서 있는 곳으로 호텔 신라의 ‘아리아께’와 조선 호텔의 ‘스시조’를 꼽고 싶다. 그 다음이 호텔 출신의 요리사들이 활동 중인 스시효, 스시초희, 스시모토, 스시 마츠모토, 스시선수, 스시타츠 등의 강남 고급 스시야들인데, 사실상 일본의 고급 스시집과 비교해도 대등한, 오히려 스시를 먹는 손님의 입장에서는 더 편안하고, 소통의 만족감이 높은 고급 스시 문화를 강점으로 한다. 게다가 스시 문화의 활발할 성장과 더불어 더욱 바람직한 방향으로의 발전이 전개되고 있는 것은, 위에서 언급한 강남 고급 스시야의 가격 거품을 제거한 중간 레벨의 스시집(이노시시, 스시마루, 스시구르메, 스시시로, 오가와스시, 이노찌, 기꾸)이 홍대를 비롯한 서울 전역에서 다양하게 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일본에서 유학하거나 호텔에서 일했던 젊은 요리사들인데, 임대료와 시설에 대한 투자를 줄이는 대신 좋은 재료와 적정 가격을 통해 고급 스시야와 무한 경쟁에 돌입하고 있어 스시를 좋아하는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매우 고마운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스시가 고급 음식으로 자리 잡은 것은 스시를 즐기는 독특한 방식을 하나의 문화로 받아들이게끔 잘 보존해온 일본만의 문화 정책 덕분이다. 고급 스시야의 경우 다이 혹은 스시 카운터라 불리는 기다란 식탁 앞에서 스시를 쥐어주는 요리사와 다양한 교감을 나누며, 눈앞에서 펼쳐지는 요리의 과정을 직접 보고 손에서 손으로 건네지는 음식을 먹는 독특한 방식을 취하고 있다. 호불호의 음식 취향마저 고려하는 나만을 위한 서비스를 받으면, 한 끼의 식사 과정이 어쩌면 짧은 여행처럼 특별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어쩌면, 요즘 사회적 화두가 되고 있는 소통의 문화 측면에서 본다면 가장 뛰어난 음식 문화일 것이다. 이런 스시 문화를 일찌감치 접해본 사람들은 국내에서도 일본에서 먹는 것과 동일한 퀄리티의 고급 스시를, 정통에 가까운 문화와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을 찾게 되었고, 이런 소비 계층이 많아짐에 따라 강남에 고급 스시야가 2~3년 전부터 속속 들어섰다. 이탤리언 레스토랑 일색이던 청담동에 새로운 스시야 벨트가 형성되었다고 말할 정도이다.
본토 스시의 막강함과 스시홀릭으로 이르는 길
스시의 나라인 일본의 경우 100엔 회전 스시에서부터 한 끼에 60만 원 이상을 호가하는 고급 스시야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자랑한다. 국내에서 접근성이 가장 좋은 후쿠오카만 해도 스시집이 1200여 개, 북해도에는 약 1600여 개가 있다 하니 국내와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가장 비싼 고급 스시야를 가려면 도쿄의 긴자에 가야 하겠으나, 개인적으로는 북해도를 최고로 여기고 있다. 그 이유는 밥(샤리) 위에 올라가는 재료(네타)가 가장 풍부하고 좋은 곳이 북해도라고 판단하고 경험했기 때문이다. 북해도 최고의 스시집은 역시 시마미야 사장이 이끄는 스시 젠(善)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 내에서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국내 대기업 회장들과 정치인들도 이곳의 단골로 유명하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북해도 최고의 스시는 마루스시와 스시 아리마라는 작은 스시야다. 북해도에서 먹는 스시는 너무나 환상적이어서 요리사들에게 그 비결을 물어보면, 좋은 재료를 단순히 자르고 구운 것밖에 없다고들 답한다. 북해도의 성게(우니)와 연어알(이쿠라)스시를 입안에 넣으면, 지금껏 내가 먹은 스시는 무엇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개인적으로 일본의 스시야를 찾아 다닐 때에는 타베로그(r.tabelog.com)의 일본 전체 스시집 인기도를 참고하는데, 한국과 가까운 후쿠오카에 타베로그 랭킹 3위를 차지한 텐(天)스시가 있다. 텐스시는 생선으로 요리할 수 있는 최고의 음식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곳으로 전통 방식의 에도마에 스시가 아닌 창작 스시를 선보인다. 국내에는 창작 스시로 유명한 후쿠오카의 타츠미 스시가 입점해 있다. 여기는 한때 대기업 부회장이 가보고 싶다고 트위터에 올려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이와 같이 국내와 일본에는 아주 다양한 스시야가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이 그러하듯 스시도 가장 비싼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100엔 스시에서 시작해서 회전 스시, 일반적인 스시를 경험하면서 미각을 단련한 후, 최후에 무지막지한 금액을 지불하고서도 맛있게 먹었다고 허리 숙여 셰프에게 인사를 하고 나올 수 있는 그런 고급 스시야에서 진정한 장인의 손맛이 밴 스시를 느껴보라 추천하고 싶다. 세상의 모든 스시야는 그 이름만큼이나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