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로수길이라는 무대를 걷는 사람들
도시를 하나의 무대라고 본다면, 그 무대의 주인공은 도시의 시민들이다. 그들은 어떤 무대를 원하고 있을까? 폐쇄적인 공간에서 점점 열린 공간으로 변해가고, 아무 목적 없이도 한 번쯤 거닐어보고 싶은 거리가 늘어가는 것은 도시라는 무대를 즐기고자 하는 주인공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가로수길을 걷다 보면 절로 힘이 난다. 달리 갈 곳이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구를 만날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거리를 걸으며 배회하는 기쁨이 있다. 아무리 염세적인 사람이라도 힘을 내서 걷게 하는 도시의 거리이기 때문이다. 빽빽이 늘어선 쇼윈도 구경에 정신이 팔려 걷다 보면 어느새 거리가 끝나 있을 정도이다. 구경거리는 쇼윈도의 상품만이 아니다. 카페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살아서 움직이는 마네킹처럼 멋지고 세련되어 보인다. 그들은 볼거리이면서 걷는 인파를 구경하는 주체이기도 하다. 도시의 거리는 상품의 소비공간이지만 이처럼 시선과 시선이 교차하는 스펙터클을 이룬다.
그에 비하면 처음 성인이 되어 경험한 80년대의 카페에 대한 기억은 칠흑 같은 어둠뿐이었다. 햇살이 한 점이라도 들어오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창을 꽁꽁 닫아두어서 옆 사람의 얼굴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둡고 촛농이 기다란 촛불만이 하늘거리고 있었다. 오래된 연인 사이에 은밀하게 만날 수 있는 장소로는 더 바랄 나위가 없었지만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은 서먹한 관계에서는 난감하기까지 했다. 최초로 경험한 성인의 공간이었지만, 사회 모순에 대항하던 용기 있는 동료를 무기력하게 바라보며 숨어드는 피난의 공간이었으며 점심보다 많은 돈을 커피값으로 지불해야 하는 과잉 소비의 공간이기도 했다. 어두운 데다 칸막이까지 있는 낮고 작은 공간에서 청춘은 희망하고 절망했다. 90년대를 지나며 카페는 진화한다. 어둠과 칸막이를 걷어내고 탁 트인 공간에 여유 있게 소파를 놓아둔 카페가 유행한다. 이전의 카페가 시각작용을 최소한으로 거세한 것과 달리 90년대의 카페공간은 순전히 시선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처럼 화려하고 개방적으로 변한다. 동행한 여자친구와 남자친구를 모두에게 과시하고, 심지어는 창 밖의 행인에게까지 선보이는 노출의 공간이 된다. 탁자 위에 올려놓은 자동차 열쇠처럼 말이다. 이러한 노출과 과시의 욕구는 공간으로 전이되어 일종의 양식으로 만들어지게 되었다.

건축이 숭고한 건축가의 형태의지가 표상되는 도구이거나 사회의 거울로 시대의 문제와 가능성을 표출하는 시각언어이기를 기대하는 건축가들의 바람과 달리 건축은유행을 쫓고 그 첨단에는 상업공간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러한 진화는 이전까지는 은밀한 대화와 몸짓이 가능한 사적인 공간이었던 카페가 공적인 영역으로 진출하였음을 말한다. 또한 프라이버시의 중요한 요건이 시각임을 말해준다. 주체와 시선의 관계는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이자 후기구조주의자라고 할 수 있는 자크 라캉에 의해 구조화되었다. 시각에 대한 서구의 전통적인 이해는 대상으로서의 세계가 망막에 투영되고 대상과 주체의 망막을 연결하는 일대일의 대응관계가 하나의 이미지를 구성하는 것이었다. 르네상스의 원근법이 이러한 이해를 재구성하는 새로운 세계관의 표상이기도 했다.
라캉은 이를 비판하며 주체로서가 아니라 모두가 참여하는 영역이 이미지를 구성한다고 반박하며 수많은 시선의 그물망이 사회와 문화와 관계하여 만들어내는 집합적인 시선을 응시라고 구분한다. 따라서 ‘나’라는 주체는 능동적으로 시선을 통제할 수도 없고 시선의 중심에 있지도 않으며 타인의 시선에 의해 결정된다.
여기에서 응시의 관계는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여러 응시가 집중되는 무대와 관객의 관계가 있는가 하면 다양한 응시가 교차하는 거리의 관계가 가능하다. 전자에서는 무대 위의 배우와 객석의 관객의 관계로 역할이 고정된다면, 후자의 관계는 거리를 걷는 이는 다른 행인을 보는 동시에 보임의 관계이다. 거리에서 건축과 사람은 주체와 객체의 관계에 종속되기보다는 하나의 스펙터클을 이룬다. 그 풍경에 참여하고 그 풍경을 즐기는 상호관계가 성립한다.
가로수길을 걷는 경험은 도시라는 거대한 극장을 구경하는 관객이라기보다는 문예비평가 벤야민이 말한 만보객과 흡사하다. 독일인인 벤야민이 파리를 칭송하며 부러워했던 ‘만보객(Flaneur)’은 사실은 좀 애매한 개념이다. 누구도 이 정의에 부합하는 인물을 정확히 짚어낼 수는 없으며 이후에 인용된 수많은 언급도 벤야민의 글을 향하고 있을 뿐이다. 그는 만보객을 ‘거북을 데리고 거북과 보조를 맞추며 산책을 즐기는 신사’로 묘사하고 있지만 이는 상징적인 묘사일 뿐 명확하게 정의하고 있지는 않다. 다만 그의 다양한 저작에서 만보객이 부유하고 세련되었으며 파리를 거니는 예민하고 고독한 남자의 관념적이며 상상적인 이미지라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만보객이라는 개념은 여러 가지로 해석되겠으나, 첫째로는 거리를 어슬렁거리며 상품과 대중을 시각적으로 소비하는 인물을 뜻한다. 동시에 산업화의 속도와 생산에 대한 강요를 거부하는 양가적 인물로 정의된다. 거리의 쇼윈도로 대표되는 현대의 새로운 상업문화에 매혹되어 있으면서도 동시에 그 문화와 현대의 속도에 저항한다.
둘째로는 18세기 파리가 도회적 산책이 고상한 취미가 될 만큼 매력적인 도시였다는 사실이다. 이 시기에 공원과 거리를 자신의 거실과 응접실 삼아 주거 형태를 확장하는 현대적 도시가 성립되있고 그 안에서 매력적인 생활을 누리기 시작했다는 시대적 배경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만보객은 파리의 발명품이며 파리의 근대적 공간이 만보객의 출현을 가능하게 하는 배경인 것이다.
1800년대 중반 나폴레옹 3세의 지원 아래 파리의 시장이었던 오스망 파리가 시행한 프로젝트는 중세의 파리를 세계 최초의 현대도시로 탈바꿈시키는 대대적인 개혁이었다. 이전까지 파리의 거리는 좁고 옹색했으며 불결했다. 궁전이나 성당, 공원 같은 기념비적 건축물과 빈민가는 구분 없이 연결되어 있었다. 오스망 파리는 숲을 베어내듯 중세의 좁은 도시에 대로를 내는 것으로 도시 정비를 시작했다. 주요 건축물들과 광장을 잇는 널따란 도로를 만들었는데 이를 ‘블러바드’라 부른다. 블러바드 아래에는 거대한 하수관을 묻고 양편으로 쾌적한 인도를 만들어 만보객의 출현을 가능하게 했다. 새로운 종류의 공공공간인 대로(大路) 덕에 파리시민은 본격적인 의미의 도시생활을 누리게 된다. 이렇게 한가롭게 대로를 거니는 사람들로 가득한 도시의 거리에서 사람은 주체와 객체의 관계에 종속되기보다는 하나의 스펙터클을 이룬다. 그 풍경에 참여하고 그 풍경을 즐기는 상호관계가 성립하며, 이는 자연의 감상과 관찰과는 다른 새로운 현대적 경험이 되었다.
상하이와 두바이 같은 신흥도시들이 쉽사리 파리나 뉴욕 같은 전통적인 도시를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은 그 화려한 건축이 관객을 압도하는 일방적인 무대와 관객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가로수길은 관객이 배우이며 관객이 참여해서 만들어내는 중요한 도시적 풍경이다. 봄과 보임의 관계와 그 매개공간으로서 거리는 도시의 핵심요소이자 가장 중요한 자산이다. 가로수길을 만보해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