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치환의 인터뷰가 계속 눈에 띄었다. ‘그 동안 어떻게 살아냈을까’ 하는 궁금증이었을까? 그 기사에 자꾸 클릭했다. ‘그래, 난 386이다’라는 제목으로 콘서트 한다는 안치환.... 소위 운동권 가요를 부르던 사람이었다. 민중가수라고 해야 할까? 대중가수와의 차이는 뭘까? 가수라 부르려니, 그 시절 그의 존재감이 작아지는 듯 하여 그렇게 부를 수 없다고, 내 스스로 오버했다. 그런데...인터뷰 내용 중 ‘한낱, 가수’라는 텍스트 한 줄이 가슴을 쳤다. 자조적인 말이라 했다. 누가 볼 때는 진짜 맘에 안 드는 놈일 수도 있고, 누가 볼 때는 괜찮은 놈일 수 있다고.... 광고에도 이런 놈이 하나 있다. ‘자막’이라는 이름의 친구. 이제부터, 자막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O,X로 즐겨 보시라.
그림에 손대지 말고, 자막처리 하지 뭐! (O,X)
한 때,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자막은 좋게 말하면 또 하나의 카피광고였고, 나쁘게 말하면 광고내용을 돕기 위한 그야말로 텍스트 중 하나라는 이분법적인 범주에서 놀던 때가 있었다. PRINT에서는 그나마 수월했지만, TV광고에서는 자막만으로 광고를 만든다는 것은 어쩐지 직무유기의 죄책감을 들게 했다. 모름지기 아이디어 하면 비주얼이었던 것이다. 특히, 광고주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싶어 할 때, 광고를 무슨 짬뽕으로 알 때, 크리에이터들이 은근슬쩍 광고주를 안심시키며 넘어갈 때 쓰던 수법, 제품 옆에 특장점들을 보이지도 않게 자막 처리하여 자막의 존재감을 상실케 했던 시절이 있었다.그림만 보고도 알 수 있는 것을, 한번 더 친절하게 설명해야 할 때 ‘자막처리’로 ‘자막’을 남발하기도 했었다.
궁금증, 혹은 답을 가르쳐 줄 땐 단독자막 아니겠어? (O,X)
Key word의 강조를 위해, 혹은 커뮤니케이션의 원활한 귀결을 위해, 혹은 이것도 중요하고 저것도 중요할 때... 속칭 통자막, 단독자막으로 표현하면 카피라이터와 아트가 싸울 일이 없던 시절이 있었다. 여기서 조금 아이디어를 내면 단독자막이 어떻게 생기느냐의 완성도 문제에서 간극이 벌어질 수 있었다. 돌이켜 보니 한 컷 정도는 자막의 존재가 기억나기도 한다.
움직일 수 있어, 자막도 춤을 출 수 있다구! (O,X)
그러던 어느 날, 전형적인 자막이 새로운 자막의 시대를 열었다. 스크래치한 자막으로, 또 어떤 때는 제품 혹은 모델과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춤까지 추기 시작했다. 아이디어는 더 이상 비주얼 만의 것이 아니었다. 필체마저 아트로 인식되면서 글씨 잘 쓰는 누군가의 필체를 받기 위해 부탁을 하게 되었고, 캘리그래피라는 분야마저 전문분야로 펼쳐졌으니 더 이상 자막은 한낱 자막일 수 없다.
나는 자막을 존경한다 (O,X)
자막은 진화한다. 비주얼로 이미 진화되었으며, 어디로 진화할지는 모른다. 만드는 사람, 만들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할 수 있고,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만들 수 없다. 더 이상 자막은 아웃사이더가 아니다. 당당한 주인공이다. 아이디어다. 신선한 충격을 안겨 준다. 36.5도의 체온마저 느껴지게 한다. 때로는 입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고, 때로는 쿨한 멋진 남자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제, 한낱 자막에게 기대하게 된다. 존경을 표한다. 내가 미쳤나?
▶ 한낱, 자막...상큼한 충격을 주다니!
인터넷 하면 검색, 검색하면 단어, 단어는 글자, 글자? 그렇다면 자막?....네이버는 이 캠페인으로 ‘검색하면 네이버’라는 대표가 되었다. 우리가 일상에서 검색할 수 있는 모든 궁금증과 단어를 결합시킨 자막광고캠페인. 한마디로 ‘자막광고도 이렇게 할 수 있지롱!’ 하고 자막광고는 광고도 아니라고 생각한 광고인을 약올린 광고가 아닐까? (광고1 참조)
네이버 -‘날씨’,’몸매’편 (광고1)
▶ 한낱, 자막...이렇게 쿨하다니!
사운드디자인과 한 몸처럼 움직이는 자막, 철저히 주인공이었다. 게다가 지적인 모습, 냉정한 이미지를 뿜어 내다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리고 오히려 인서트컷으로 조연처럼 들어왔다 사라지는 제품이미지는 더 멋진 모습으로 상상되었다. 이것은 또 다른 자막광고의 시작이 아닌가! (광고2 참조)
LG전자 엑스캔버스 -‘FULLHD XCANVAS’편 (광고2)
▶ 한낱, 자막... 지가 비주얼인줄 알다니!
이것은 또 무엇인가. 스케이트 보드를 탄 친구가 자막 사이로 드나든다. 이것은 자막이 아니다. 비주얼이다. ‘좋은 것도 더 좋아질 수 있다’라는 주장의 카피. 카피도 비주얼이다. 좋은 것의 진화를 말하려는 것인데,‘T가 뭘까?’라는 기대감을 가진 것은 나만의 일이었을까? (광고3 참조)
SK텔레콤 T –‘스케이트보드’편 (광고3)
▶ 한낱, 자막... 한계를 모르다니!
너무 어두운 느낌이라 화장품광고에 어떨까 싶지만, 의도는 참신했던 자막광고다. 발자국소리와 함께 소비자인 ‘나’의 시선으로 자막을 스쳐 지나간다. 여자들이 생각하는 피부고민에 대한 생각에서 그 해결에 이르는 제품에 이르기까지 주목하게 만들었던 한편의 광고, 수분크림의 진실에 대한 광고 또 한 편이 이어졌다. 자막은 허공에서 입체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부유하는 존재...자막은 그 동안 평면이었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평면 그 이상을 생각해 본 일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또 이렇게 자막은 진화하고야 말았다. (광고4 참조)
엔프라니 수퍼아쿠아크림 –‘진실은 수퍼아쿠아크림에 있다’편 (광고4)
▶ 한낱, 자막... 너는 자막이 아니다!
‘생각이 에너지다’라는 카피를 보니 언젠가 지면에서 본 기억이 난다. 정유회사인 것으로 기억된다. S사의 기업 PR이 아닐까… 에너지회사에서 ‘생각이 에너지다’라는 주장은 에너지에 대한 새로운 생각으로 우리를 이동시켰다. 카테고리를 뛰어넘는 벅찬 감동까지 전해주면서. 지면에서 본 이 카피에서 소름이 돋았건만, TV광고에서는 비주얼까지 더해지니 더 짜릿하다. 자막과 레드 배경이 파티클로 사라지자, 궁금증이 더해지고 사진 한 장이 등장한다. 기업의 일방적인 메시지가 아니라 시청자들이 알고 있는 사실에 생각해 보지 못한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통찰력의 힘이 더해지니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질 수 밖에. (광고5 참조)
티저광고 -‘생각이 에너지다’편 (광고5)
한낱, 자막으로부터...
하루에 고작 몇 시간 찍고 몇 억을 챙기는 스타에게 턱없는 모델료를 주지 않아도 된다. 제품을 철저히 주인공으로 만들 수 있다. 하고 싶은 이야기 다 해도 된다. 제작비가 모자랄 경우, 자막은 기꺼이 절묘한 아이디어가 되어준다. 더 이상, 자막은 조연이 아니다. 소비자들에게 매력을 뿜어낼 수 있으며, 브랜드를 사랑하게 만들 수 있는 주인공이다. 제작비는 없지만 기발한 아이디어 요구에 지치지 않는 광고주에게도, 늘 새로운 광고를 만들어 보겠다며 밤을 지새우는 크리에이터에게도 한낱, 자막은 썩 괜찮은 아이디어를 계속해서 제공해 줄 것이다. 믿는 자에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