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ㅣ 이정주 <노블레스> 에디터
대중의 심리는 참 묘해서, 잘 생기고 예쁜 사람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면서도 또 한 편으론 그들에게 파격적인 무언가를 기대한다. 이를 테면 이런 거다. 우아함을 온 몸으로 발산하던 여자가 갑자기 푼수처럼 실수를 연발한다거나, 무게 잡던 농후한 외모의 신사가 어이없게 개그맨 흉내를 내는 모습. 특히 선망의 대상인 스타를 두곤 더욱 그렇다.
그래서 많은 스타들은 한 때 조각 같은 외모에 강렬한 눈빛으로 승부해 여성 팬의 마음을 설레게 하다가도, 어느 순간 180도 다른 모습으로 어필한다. 이러한 시도는 스타에겐 이미지 스펙트럼을 넓히는 발판이 됨과 동시에 대중의 호감도를 상승시킬 수 있는 수단이 되기도 하기 ?문이다.
‘그 예쁜 김태희도 ···’
최근 몇 편의 드라마에서도 스타의 기존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덕분에 TV 보는 재미가 꽤 쏠쏠했다. ‘여신급’으로 인정받는 외모에도 불구, 연기력 논란에 시달리던 김태희는 최근작인 <마이 프린세스>에서 기존의 청순가련 이미지를 버리고 굴욕 투혼을 펼쳤다. 아마도 대중들은 그녀의 연기에 환호를 보내면서도 ‘김태희처럼 예쁜 여자도 저렇게 망가질 수 있구나’ 하는 생각에 짜릿한 즐거움을 느꼈을 게 분명하다.
얼마 전 큰 인기 속에 종영한 <시크릿 가든>의 현빈도 엑스트라로 분한 신에서 댕기머리에 점을 붙인 포졸로 등장하는가 하면, 여자 속옷을 착용한 장면 등으로 웃음을 선사했다. 사랑하는 여인을 향한 애절한 눈빛을 지닌 ‘차도남’과 우스꽝스러운 모습 사이를 줄타기하며 펼쳤던 그의 연기는 ‘현빈앓이’ 신드롬까지 일으켰으니, 그의 변신은 성공적이었다.
얼마 전 큰 인기 속에 종영한 <시크릿 가든>의 현빈도 엑스트라로 분한 신에서 댕기머리에 점을 붙인 포졸로 등장하는가 하면, 여자 속옷을 착용한 장면 등으로 웃음을 선사했다. 사랑하는 여인을 향한 애절한 눈빛을 지닌 ‘차도남’과 우스꽝스러운 모습 사이를 줄타기하며 펼쳤던 그의 연기는 ‘현빈앓이’ 신드롬까지 일으켰으니, 그의 변신은 성공적이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그렇지만, TV광고 또한 스타들의 이런 ‘망가지는’ 이미지를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고급스러운 이미지가 중요한 아파트나 자동차 광고는 또 다르겠지만, 소비자에게 인지도가 높지 않거나 딱딱한 이미지로 인식된 브랜드의 경우 친근함을 먼저 느끼게 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최근의 사례 중 가장 인상적으로 남는 것은 중년 연기자 김갑수가 등장하는 광고다. 그 동안 그는 진지한 연극배우, 혹은 개량 한복이나 막걸리를 즐길 것 같은 구수한 아저씨의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그랬던 그가 어느 날 토크쇼에 나와 자신의 숨겨진 면모를 대중에게 알렸다. 모터바이크 · 트위터 등 젊고 트렌디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에 얼마나 민감하고 익숙한지 뿐만 아니라 ‘단명(短命)전문 배우’임을 각인시켜 유쾌한 면모를 어필하더니, 결국 광고에까지 출연했다.
자신이 드라마나 영화에서 죽는 장면을 찾는 코믹한 장면을 연출한 것이다. 보는 이로 하여금 SKT의 호핀 서비스에 대해 인지시킨 것은 물론, 김갑수라는 배우의 또 다른 이미지를 목도하는 즐거움을 안겨준 광고가 아닐 수 없다.
누군가와 오래도록 친하려면
그런가 하면 톱스타 소지섭도 전에 볼 수 없었던 코믹한 모습을 선보여 기억에 남는다. KT테크가 새로운 스마트폰 ‘테이크2’의 출시에 맞춰 선보인 TV광고에서다. 과묵하고 고독한 이미지로 일관하던 그는 기존의 이미지를 과감하게 벗어 던졌다. 스마트폰 매뉴얼이 적힌 종이를 뜯어 먹다가 목에 걸리는 연기라던가, ‘학교 성적 58점’ 이라는 자랑스럽지 않은 점수 앞에서 괴로운 표정을 슬며시 웃음이 난다. ‘소지섭도 나, 혹은 바로 내 주변과 크게 다를 바 없이 인간적인 캐릭터였구나’ 하는 생각에 왠지 모를 안도감과 위안, 친근한 감정이 몰려들어서다.
이러한 일련의 광고 트렌드에는 일상생활 속의 사람 간의 관계에서도 통용되는 감성적인 코드가 숨어 있다. 쓸데없는 권위의식보다는 다가가기 편한 선배나 상사가 좋고, 가까이 하기엔 너무 멀기만 한 왕자님보다는 편하고 유머러스한 남자와 더 잘 통하는 경우가 많다. 마음이란 게 간사해서, 화려하고 멋진 것에 먼저 눈을 두다가도 또 변덕이 죽 끓듯 하게 마련이다.
그 마음을 사기 위해선 친근함 만한 게 없다. 어느 순간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거나, 괜스레 멋있는 척 폼 잡을 것 없이 적당히 망가지는 것도 필요하다는 얘기다. 영화나 광고도 그렇지만, 누군가와 오래도록 설레는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는 반전만큼 효과적인 것도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