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ㅣ 이수지 기자
지난 2006년부터 재정비작업에 들어가 3년 만에 어렵사리 사업에 재개된 기금조성용 옥외광고가 사업을 주관하고 있는 옥외광고센터의 일관성 없는 광고심의로 인해 또다시 난항을 겪고 있다. 업계에서는 옥외광고산업의 육성 발전을 위해 2008년 5월 설립된 옥외광고센터가 관료주의적 탁상행정과 무책임한 업무 진행으로 1년 반이 지나도록 사업자선정을 다 끝내지 못하고 난항을 거듭하더니 이제는 그나마 사업 진행을 하고 있는 권역에서마저 심의 문제로 인해 광고주와 광고회사는 물론 사업자에게까지 막대한 피해를 주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옥외광고센터의 사업자선정 공고 과정은 아직까지도 업계에서 기막힌 일화로 회자되고 있다. 2008년 12월 31일 저녁시간 무렵 센터 홈페이지내 공지사항에 공고문을 올려놓는 것이 전부였다. 연말 연휴 전날, 누가 보든 말든 응찰을 하든 말든 맘대로 하라는 심산이 아니면 납득하기 어려운 처사라는 게 업계 공통된 얘기다. 그렇게 시작된 사업자선정 과정은 유찰 재입찰 과정을 반복하며 1년 반의 시간이 걸렸고, 아직도 3개 권역에서는 사업자를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광고심의, 그때 그때 달라요
사업자가 선정된 권역에서도 옥외광고센터에 대한 업계의 원성은 그칠 줄 모른다. 어렵사리 인허가를 받아 광고물을 세웠는데 이제는 광고사전심의로 발못을 잡는다는 것.
현재 옥외광고는 각 지차제(구청)에서 옥외광고심의위원회를 두어 광고설치전 사전심의를 하고 있는데, 야립광고의 경우는 옥외광고센터가 자체 심의위원회를 운영, 사전심의를 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옥외광고센터의 사전심의가 도를 지나쳐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통상 심의결과는 통과, 권고, 부결 등 세 가지. 통과와 권고는 광고 집행이 가능하지만 부결 결정은 광고 수정을 거치지 않고는 집행이 불가하다. 그런데 그 부결 이유가 납득하기 힘든 수준이라는 것이다.
A사의 경우, 서울시내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동일한 기업광고가 옥외광고센터 심의에서는 부결됐다고 한다. 이유는 광고가 울긋불긋해 눈에 자극을 준다는 것. 결국 전체적으로 톤다운을 해 비주얼을 탁하게 만들고 나서야 광고를 걸 수 있었다.
현재 한남대교를 비롯한 올림픽대로와 경부고속도로 서초주변, 인천공항고속도로 일부지역의 야립광고는 설치규정상 모두 복합형 광고라고 한다. B사의 경우 이 복합형 광고 때문에 곤혹을 치렀다. 일반적으로 평면광고를 더 선호하기 때문에 많은 광고주가 최소한의 복합형을 추구하는데, 이미 선례도 있었기에 기업로고만을 돌출시켜서 광고를 만든 것. 부결 결정을 내힌 심의위원들의 요구는 이미 광고를 집행하고있는 타사 광고랑 똑같이 기업로고만 튀어나오게 하지 말고 좀 다르게 수정해오라는 것이었다.
C사의 경우도 기업명만 돌출된 복합형 광고를 만들었는데 심의에서 좀 더 입체적으로 하라고 명령해 글자의 위라해 선까지 돌출시키고 나서야 광고를 걸 수 있었다고 한다.
D사의 경우는 기업슬로건을 활용해 비주얼 없이 문자로만 광고를 만들었는데 심의 부결의 이유가 글씨가 너무 많아서 잘 안보이니 문자를 줄이고 그림을 넣어달라는 것이었다.
이밖에도 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글씨가 너무 굵다”, “글씨체가 맘에 안든다”, “색상이 맘에 안드니 다른 색으로 바꿔라”, “그림이 너무 많아 답답해 보인다” 등 부결, 권고 결정의 이유도 아주 다양했다.
불명확한 심의 가이드라인, 자의적 판단 부추겨
옥외광고센터측은 자체 연구결과를 토대로 만든 ‘기금조성용 옥외광고물의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기준으로 심의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런데 이 가이드라인이 문제의 소지를 담고 있다. ‘배경이 복잡하여 산만해 보이지 않는가. 광고의 내용과 성격, 목적에 맞는 글꼴을 사용하였는가. 사용된 색상이 자극적이지 않은가. 광고물의 디자인이 어디선가 본 듯하지는 않은가. 운전자의 시선을 자극해 피곤하게 하지는 않는가. 지나치게 먼 곳에서부터 시선을 집중시키지는 않는다 . .’ 가이드라인의 체크리스트 항목 중 일부 내용이다. 판단기준이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으롱 러마든지 자의적인 판단이 가능하다.
한 대행사 관계자는 “야립광고 하나 거는데 한 달에 1억, 3년이면 36억이다. 이런 비용을 들이면서 광고주나 광고회사가 아무 생각 없이 광고를 만들겠나. 일반 대중에게 가장 호감을 줄 광고를 오랜 시간 연구하고 조사하면서 고심 끝에 만들었는데, 광고전문가도 아닌 심의위원들이 광고디자인에 대해 말도 안 된다는 이유로 즉흥적인 부결 결정을 해버리니 정말 황당하다”며 옥외광고센터의 심의결정에서는 어떤 논리와 근거도 찾아볼 수 없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대행사의 담당자는 “광고에 대한 전문성이 떨어지는 건 물론이고 ‘그렇게 하려면 차라리 광고하지 말라‘며 막말을 던지기도 한다”며 심사위원들의 자질이 의심스럽다고 전했다. 심의위원들은 마치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듯 지나친 관료주의와 고압적인 자세로 이전부터 업계의 원망을 들어왔다고 한다.
옥외광고센터 관계자에 따르면 심사위원은 센터장 포함 총 17명으로 이중 과반수 이상인 9명이 참석하여 심의를 진행한다고 한다. 심의위원 명단은 비공개라고 밝히지 않았으나, 취재 결과 디자인관련학과 교수 5명, 광고홍보학과 교수 2명, 건축공학과 교수 2명, 전기공학과, 도시계획과, 옥외광고업계 인사가 각 1명, 그리고 전현직 공무원이 4명인 것으로 파악됐다. 심의일정은 어느 정도 심의건수가 모이면 심의위원을 소집, 광고심의를 진행하는데, 평균 월 1회 정도라고 한다. 만약 디자인심의가 있는 날 디자인이나 광고홍보 관련 교수가 불참하고, 전현직 공무원을 비롯한 도시계획, 전기공학 관련 교수가 참석해 회의를 한다면 난감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경우가 비일비재하게 발생한다고 한다.
그런가하면 비정기적인 심의일정 때문에 피해를 보는 경우도 있다. 심의날짜가 일정치 않고, 만에 하나 부결 결정이 되면 다시 한 달여를 기다려 광고심의를 해야 하기 때문에 기업의 마케팅 계획에 큰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얘기다. 옥외광고센터측은 통상 10여건의 심의건이 모이면 심의위원회를 소집하지만 급한 사안일 경우에는 2주안에 재심의를 소집하기도 한다고 밝혔지만 심의를 받는 입장에서는 결코 만족스러운 처사는 아닐 것이다. 사업자에게 지연되는 시간은 곧 돈이다. 때문에 심한 경우 법정소송까지 불사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한 대행사 관계자는 비단 야립광고뿐만 아니라 각 구청에서 하고 있는 옥외광고심의도 사정은 마찬가지라며 “방송광고의 법적 사전심의도 위헌으로 결정 났는데 옥외광고의 법적 사전심의 또한 위헌소지가 있는 것 아니냐” 며 반문했다. 각 구청의 심의 역시 지극히 자의적 판단으로 즉흥적인 결정을 내리기 일쑤고, “구청이랑 싸워봤자 해결되는 것도 없으니 무조건 바꾸라는 대로 수정해서 가는 편”이라고 한다.
옥외광고물등 관리법에서 규정해놓은 것처럼 음란, 미풍양속 저해, 사행심 조장, 청소년 유해 등 큰 틀에서만 제제를 하면되지, 색상이 진하니 글씨체가 맘에 안드니 하면서 지나치게 제한을 하니, 옥외광고에서 크리에이티브를 발휘할 수 있는 범위를 원천봉쇄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한탄했다.
업계 의견 반영한 규제완화 정책 시급
옥외광고센터는 옥외광고물등관리법에서 명시하고 있는 ① 옥외광고산업의 육성 · 발전을 위한 정책의 수립 및 개발 ②신소재 · 신매체 기술의 개발 · 보급 · 지원 및 외국기술의 도입 ③ 옥외광고물에 대한 경관 · 교통 · 안전 관련 영향평가에 관한 사업 ④ 옥외광고산업 전문인력의 양성 및 교육지원 ⑤ 옥외광고 관련 정보의 수집 · 공유 · 활용에 고나한 사업 ⑥ 옥외광고에 관한 홍보, 의식개혁 등에 관한 사업 등 총 10가지의 목적을 위해 설립됐다. 그러나 지난 2년간 옥외광고산업의 육성 발전을 위해 무슨 사업을 벌여왔으며 어떤 성과를 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기금조성용 옥외광고사업 외에 2009 년도의 옥외광고 정책간담회 2건, 올해 상반기 정책세미나 1건이 전부다.
급기야는 옥외광고센터의 이관이 거론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지난 4월 이은재 한나라당 의원은 옥외광고물등관리법 개정안을 발의하여 옥외광고센터의 명칭 변경 및 지방행정연구원으로의 이관을 제안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정부산하기관에서 독립해 민간기구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다. 한 대행사 관계자는 “타 매체와 달리 옥외광고는 단가도 다 틀리고 광고주는 물론 광고회사들끼리도 정보 교류가 전혀 없다. 옥외광고센터가 바로 이런 답답한 부분을 해결해 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전혀 그러질 못하고 있다. 차라리 독립기구로 만들어 옥외광고와 관련된 정보 교류, 연구사업, 그리고 무엇보다 각 지차제로 흩어져 있는 심의업무만이라도 일원화시켜 창구 역할을 해주면 좋겠다” 고 말했다.
또 다른 옥외광고 담당자는 “옥외광고센터의 심의 가이드라인부터 수정해야 한다” 며 “어느 매체건 심의는 최소화하는 것이 광고산업 발전을 위한 가장 바람직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옥외광고센터는 기본적인 방향성만 제시하고, 광고 디자인 측면은 광고전문가에게 맡겨 크레이이티브 영역에서 최대한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것이 센터가 할 일” 이라고 전했다.
최근 다양한 뉴미디어의 등장으로 광고주의 옥외광고에 대한 관심과 선호도는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는 추세다. 옥외광고산업의 육성 발전을 위해서는 실효성 있는 규제완화 정책과 함께 기업의 원활한 광고활동을 위한 배려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