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김상진(기획6팀국장)

일본에서는 작품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작가로 인정받고 있다. 특유의 쓸쓸하지만 아름답고 서정적인 문체와 기이하면서도 감동적인 이야기에 빠져 시간이 날 때마다 그녀의 작품을 읽는다.
이런 걸 필 받았다고 해야 하나?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냐는 질문에 주저 없이 오가와 요코를 말할 정도로 어느 순간부터 그녀의 작품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이 소설은 그녀의 작품 중 가장 극단적이고 파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가학과 피학, 폭력…. 포르노를 연상케 하는 외설적 이야기도 나온다. 혹자는 과연 이 작가가 『박사가 사랑한 수식』을 쓴 작가와 동일 인물인지 의심하며 놀라기도 한다.
그만큼 내용이 파격적이며 스타일 역시 이전과 전혀 다르다. 이 소설은 ‘호텔 아이리스’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초로의 번역가와 17세 소녀가 벌이는 파멸의 사랑 이야기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이 존경과 이해를 바탕으로 한 따뜻한 사랑 이야기라면, 이 소설 속 사랑은 인간성과 인격을 뿌리째 흔들어 파멸로 이끄는 사랑이다. 외설적이고 폭력적인 소설은 오래도록 먹먹한 여운을 남긴다. 이 작품 역시 오가와 그녀의 소설임이 분명하다.
이 소설을 단순히 외설적이고 파괴적인 소설이라 치부할 수 없는 이유는 작가가 자신의 작품에서 늘 천착하는 주제인 상실과 부재, 고통, 채워지지 않는 욕망과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제기하기 때문이다. 차마 말로 꺼내기 어려운 인간의 어두운 단면을, 그녀는 소설이라는 수단을 통해 제기하고, 공감하고, 해소하는 감동의 구조로 전달한다.
이 소설은 『약지의 표본』과 더불어 프랑스에서 영화화되기도 했다. 기승전결의 친숙한 스토리 구조보다 불친절한 이미지 의 향연이나 모호한 다이알로그가 난무하는 프랑스 예술 영화를 떠올려보면 그녀의 작품 중 유독 이 작품이 프랑스에서 사랑 받는 이유를 이해할 만도 하다.
하지만 이 소설은 관념적이고 현학적인 내용으로 독자를 괴롭히는 소설이 결코 아니다. 소설의 기능을 오락과 감정 이입을 통한 카타르시스라 정의한다면, 무료한 휴일 오후 동네 커피숍에서 술술 잘 읽히면서도 바쁜 일상생활로 무뎌진 감성이 스르르 기지개 펴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다만 오가와의 소설을 한 권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 소설부터 읽는 건 비추다. 잘못된 고정관념 때문에 그녀의 주옥같은 다른 소설을 영영 읽어보고 싶지 않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