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이 던진 경고: AI 콘텐츠의 신뢰성
진정한 콘텐츠의 품격, AI 넘어 사람에게 있어
글 송창렬 대표 | 크랙더넛츠
올해 칸 라이언즈에서 전례 없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최고 영예인 그랑프리를 거머쥔 브라질의 한 캠페인이 수상 직후 철회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입니다. 문제의 핵심은 다름 아닌 생성형 AI를 활용한 콘텐츠 조작이었습니다. 영상 속 뉴스 화면은 실제 언론 보도가 아닌 가상의 이미지를 합성한 것이었고, 등장인물의 입 모양과 음성까지 AI 기술로 만들어졌습니다. 심지어 존재하지 않는 통계 수치까지 사실처럼 사용됐다는 의혹이 더해지면서, 주최 측은 결국 수상을 취소했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기술적 오류를 넘어, 콘텐츠 윤리와 신뢰의 근본을 묻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기술의 무한한 가능성보다 훨씬 중요한 질문과 마주하게 됐습니다.
기술보다 앞서야 할 것: 의도와 태도
생성형 AI는 이미 수많은 창작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복잡한 카피라이팅부터 영상 시나리오, 심지어 음악과 보이스 오버까지, 과거라면 막대한 인력과 시간이 필요했던 작업이 이제는 단 몇 분 만에 가능해졌습니다. 하지만 이 편리함 속에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기술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라는 점입니다. 콘텐츠에 담긴 정보가 허구인지 아닌지를 구분하지 못할 때, 관객은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잃는 것은 단순히 기술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브랜드와 제작자에 대한 신뢰입니다. AI는 강력한 생성 능력을 지녔지만, ‘무엇을 만들지’, ‘왜 만들지’를 판단하는 역할은 여전히 인간에게 남아 있어야 합니다. 이번 사건이 던지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콘텐츠 제작의 중심에 여전히 기획자이자 판단자로서의 인간이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AI의 강점은 빠르고 방대한 ‘발산적 생성’ 능력에 있습니다. 그러나 창작은 단순히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행위가 아닙니다. 수많은 생성물 중 의미 있는 것을 분별하고, 맥락과 정서를 고려하여 재구성하는 작업, 즉 ‘편집자적 감각’은 여전히 인간 고유의 역할입니다. 기술이 아무리 정교하다 한들, 감동은 수치로 측정될 수 없습니다. 그 감동은 콘텐츠에 담긴 철학과 태도에서 비롯됩니다. 브랜드의 감정선과 어조, 문화적 맥락을 이해하고 선별하는 ‘수렴적 창의력’이 없다면, AI는 오히려 콘텐츠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신뢰 기준은 기술이 아니라 진정성
이번 칸 국제광고제 사건은 기술이 오히려 신뢰를 해칠 수 있다는 역설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반드시 다음 세 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합니다.
• 이 콘텐츠는 사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가?
• 이 안의 감정과 메시지는 정당한가?
• 기술의 사용은 투명하게 공개되고 있는가?
이러한 기준은 콘텐츠의 진정성을 유지하는 최소한의 장치이자, AI 시대의 윤리적 안전벨트입니다. 이번 칸 국제광고제 사건은 단순히 AI 기술 오용을 넘어, ‘상(賞)이 목적’이 될 때 일어나는 부작용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최고의 영예를 얻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고 조작하는 행위는 창작의 본질을 훼손하고 대중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상은 노력과 성과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자 동기부여가 되어야 하지만, 그것 자체가 최종 목표가 될 때 우리는 쉬운 길, 혹은 편법을 택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특히 생성형 AI라는 강력한 도구를 줬을 때, 이러한 유혹은 더욱 커질 수 있습니다.
기술은 ‘증폭 장치’, 사람은 ‘의미 설계자’로
저는 그동안 ‘AI Power Up Storytelling’이라는 주제로 강연해 왔습니다. 제 강연의 핵심 메시지는 AI가 스토리 자체를 만들어내는 주체가 아니라, 인간이 설계한 스토리의 감정과 메시지를 더 멀리, 더 강하게 증폭시킬 수 있는 장치라는 것입니다. 이제는 기술을 어떤 태도로 활용할 것인가, 그 기술 뒤에 어떤 철학을 세울 것인가가 브랜드와 콘텐츠의 격을 결정짓는 시대입니다. 기술은 앞으로도 계속 발전할 것입니다. 하지만 스토리의 시작과 끝에 사람의 질문, 감정, 그리고 윤리의식이 없다면, 어떤 강력한 도구도 창작을 완성할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멈춰야 합니다.
“AI로 무엇을 만들 수 있는가?” 대신 “그 이야기를 만드는 데 AI는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라고 질문해야 합니다. AI는 많은 것을 변화시켰지만, 콘텐츠의 진정한 품격은 여전히 사람이 결정합니다. 그리고 이 시대의 크리에이터는 바로 그 품격을 지킬 책임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