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메신저가 생길 무렵엔 활자와 기호를 조합해 표정을 표현하는 단순 이모티콘만으로도 굉장히 '센스 넘치는' 기술이었다. 물론 이건 주커버그 돌잡이 하던 시절 얘기고, 요즘은 웹툰 뺨치는 캐릭터 스티커로 훨씬 풍부하고 다이내믹하게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됐다. 뭐든 그렇지만 스티커 역시 잘 쓰면 득이 되고 못 쓰면 독이 된다. 지금부터 적절한 스티커 활용법으로 당신의 부족한 사회성을 채우는 방법을 알려주겠다.
TEXT. 조웅재 (대학내일 디지털미디어파트 에디터)
캐릭터 스티커의 힘
최근 국산 캐릭터 시장을 쌈싸먹는 캐릭터는 로보카 폴리도 아니고 뽀로로도 아니다. 놀랍게도 국민 이모티콘이라 불리는 카카오프렌즈와 라인프렌즈의 대결 구도다. 이런 싸움을 부추기는 소비의 주체도 초딩이 아닌 성인들이다. 이미 이모티콘은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 라이프스타일에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우리 지갑을 털어가고 있다는 얘기다.
라인과 카카오톡이 당사의 웰메이드 캐릭터들을 무료로 풀어놓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기업은 자본과 디자이너들을 갈아 넣었다. 스티커를 만드는 데 소요된 야근 시간이 막 걸음마 뗀 우리 조카 인생만큼 길다. 장인정신이 담긴 스티커다. 캐릭터가 감정을 표현하는 수준이 거의 메소드 연기 급이다. 텍스트는 아니지만, 그 의미는 텍스트 이상이다. 엄지손가락을 수십 번 놀리면 만들어낸 문장보다 잘 만들어진 한 장의 스티커가 우리 감정을 더 잘 표현할 수도 있단 말이다. 그래서 쓴다. 스티커는 효율적이며, 경제적이고, 유쾌하다. 스티커를 사용하면 좋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직장에서 센스 있어 보이는 스티커 활용법
직장 카톡방에서 이모티콘을 쓰다 보면 동료들이 가끔 내게 "이모티콘 잘 쓴다"는 칭찬을 한다. 칭찬인지 욕인지는 잘 모르겠다. 직장에서 스티커는 종종 난감한 상황을 벗어나는 훌륭한 수단이 된다. 금요일 저녁, 단체 카톡바에서 상사가 "오늘 아무래도 퇴근하게 글렀지? 허허"라는 말을 꺼냈다 치자. " 맞습니다. 니 인성도 글렀죠"라고 대답하려니, 오늘은 사직서를 준비 못했다. 기계적으로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거짓말은 하기 싫고 동료들한테도 왕따당할 것 같다.
이럴 때 카톡방에 스티커(화이팅)를 붙여두면 좋다. 이 작은 25x25의 그림 안에는 "퇴근 시간에 야근을 하라니, 짜증나지만 힘내는 척은 해야겠죠. 동기 여러분도 대충 답변이나 합시다"라는 의미가 숨어 있다. 이걸 본 동료들 역시 듣도 보도 못한 (화이팅)류 이모티콘을 대충대충 내놓을 거다. 작은 그림이 만든 사내 채팅방의 소심한 반항이자 놀라운 혁명이다.
(화이팅), (만세), (위로) 등 직장에서 쓰기 좋은 이모티콘을 상사의 멘트에 대한 답변으로 활용하면 소통이 비교적 유연해진다. 보는 상사 역시 캐릭터의 적극적인 몸짓을 인지할 뿐, 그 뒤에 숨은 당신의 귀찮음을 읽진 못한다. 근데 이 글 여러분 상사가 보면 여러분은 못 쓸 듯.
연애를 달달하게 만드는 스티커 활용법
썸타는 사람과 연락을 주고받을 때 스티커를 쓰는 것, 과연 괜찮을까? 아재 나이에 가까운 성인 남자일수록 너무 가벼워 보일 거라는 기우 때문에 스티커를 잘 안 쓴다. 근데 그게 아재가 되는 지름길이다. 그럴 거면 ^^나 ㅠ.ㅠ 이런 것도 좀 쓰지 마. ㅠ.ㅠ
러트거스 대학의 헬렌 피셔 교수는 이모티콘을 자주 사용하는 사람이 성생활도 원활하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인류학 연구하는 분인데 예전에는 첫경험 몇 살이냐 뭐 이런 거 조사하셨다. 취향 엄청 확고하다. 맹신할 순 없겠지만 일리는 있다.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 예컨대 "오늘 저 야근해야 해요"와 "오늘 저 야근해야 해요ㅠㅠ" 두 개의 문장을 비교해보자. 온도 차이가 느껴질 거다. 전자가 "오늘 저 야근해야 해서 당신을 볼 시간이 없어요"라면 후자에선 그보다 강한 아쉬움이 읽힌다.
한 가지 더 팁을 주자면, 스티커를 마구잡이로 쓰기보다 당신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페르소나 스티커를 정해두는 게 좋다. 세뇌의 힘은 무섭다. 상대는 당신이 사용하는 캐릭터가 보일 때마다 눈앞에 당신이 아른거릴 거다.
좋다고 아무 데나 썼다간 큰일 나
스티커의 순기능에 관해서만 얘기했는데, 사실 꾸준히 아무 때나 쓴다고 좋은 건 아니다. 상황에 따라 스티커가 역효과를 낼 때가 있다. 다음과 같은 상황이라면 스티커를 쓰기 전에 한번 고민해보자.
사실 이걸 설명하는 것도 웃기긴 한데, 누가 봐도 이모티콘을 사용해선 안 되는 상황에서 안 쓰면 된다. 그냥 당신이 얼마나 눈칫밥 먹고 사느냐에 달렸다. 예컨대, 군기가 세기로 유명한 체대 학생회 카톡방이라 치자. 화난 선배가 "1학년들, 오늘 내 밑으로 다 집합하라 해라"라고 얘기했을 때, 당신은 "죄송합니다(울음)"라면 이모티콘을 사용할 것인가? "됐어, 오늘만 넘어간다. 다음부턴 조심해라 너희들"이라는 말에 "감사합니다(만세)"라고 대답할 건가?
이모티콘은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분명 감정을 숨기거나 절제해야겠다 싶은 순간이 온다. 이럴 땐 감정 표현에 부스터를 달아주는 이모티콘은 독이 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울음)" 하지 말라는 얘기다. "나 지금 진지해 오빠. 진짜 화났다고(버럭)" 하지 말라는 얘기다.
결국 이모티콘도 '말'이다
앞서 계속 이모티콘을 적절히 쓰는 방법이 있는 것처럼 말했지만, 결국 스티커는 말을 대체할 수 있는 귀엽고 애교스러운 수단일 뿐이다. 받아들이는 사람 역시 스티커를 언어로 받아들인다.
스티커에 기대어 감정표현을 할 수 있지만 그보다 자기 감정을 솔직하고 적극적으로 표출하는 일이 우선이다. 결국 그런 사람이 스티커도 잘 쓴다. 텍스트도 아닌 그림 주제에 인간관계의 팽팽한 텐션을 느슨하게 만드는 매력도 이런 사람 냄새 때문이다. 솔직함이야말로 스티커를 잘 쓰는 지름길이며, 이렇게 쓰인 스티커가 당신의 인간관계를 편안하게 만들어줄 거다. 이렇게 차츰 스티커 덕후가 되어간다면, 손톱만 한 그림이 우리 삶을 개선해주는 놀라운 혁명을 기대해봐도 좋을 것이다.
TEXT. 조웅재 (대학내일 디지털미디어파트 에디터)
캐릭터 스티커의 힘
최근 국산 캐릭터 시장을 쌈싸먹는 캐릭터는 로보카 폴리도 아니고 뽀로로도 아니다. 놀랍게도 국민 이모티콘이라 불리는 카카오프렌즈와 라인프렌즈의 대결 구도다. 이런 싸움을 부추기는 소비의 주체도 초딩이 아닌 성인들이다. 이미 이모티콘은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 라이프스타일에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우리 지갑을 털어가고 있다는 얘기다.
라인과 카카오톡이 당사의 웰메이드 캐릭터들을 무료로 풀어놓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기업은 자본과 디자이너들을 갈아 넣었다. 스티커를 만드는 데 소요된 야근 시간이 막 걸음마 뗀 우리 조카 인생만큼 길다. 장인정신이 담긴 스티커다. 캐릭터가 감정을 표현하는 수준이 거의 메소드 연기 급이다. 텍스트는 아니지만, 그 의미는 텍스트 이상이다. 엄지손가락을 수십 번 놀리면 만들어낸 문장보다 잘 만들어진 한 장의 스티커가 우리 감정을 더 잘 표현할 수도 있단 말이다. 그래서 쓴다. 스티커는 효율적이며, 경제적이고, 유쾌하다. 스티커를 사용하면 좋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직장에서 센스 있어 보이는 스티커 활용법
직장 카톡방에서 이모티콘을 쓰다 보면 동료들이 가끔 내게 "이모티콘 잘 쓴다"는 칭찬을 한다. 칭찬인지 욕인지는 잘 모르겠다. 직장에서 스티커는 종종 난감한 상황을 벗어나는 훌륭한 수단이 된다. 금요일 저녁, 단체 카톡바에서 상사가 "오늘 아무래도 퇴근하게 글렀지? 허허"라는 말을 꺼냈다 치자. " 맞습니다. 니 인성도 글렀죠"라고 대답하려니, 오늘은 사직서를 준비 못했다. 기계적으로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거짓말은 하기 싫고 동료들한테도 왕따당할 것 같다.
이럴 때 카톡방에 스티커(화이팅)를 붙여두면 좋다. 이 작은 25x25의 그림 안에는 "퇴근 시간에 야근을 하라니, 짜증나지만 힘내는 척은 해야겠죠. 동기 여러분도 대충 답변이나 합시다"라는 의미가 숨어 있다. 이걸 본 동료들 역시 듣도 보도 못한 (화이팅)류 이모티콘을 대충대충 내놓을 거다. 작은 그림이 만든 사내 채팅방의 소심한 반항이자 놀라운 혁명이다.
(화이팅), (만세), (위로) 등 직장에서 쓰기 좋은 이모티콘을 상사의 멘트에 대한 답변으로 활용하면 소통이 비교적 유연해진다. 보는 상사 역시 캐릭터의 적극적인 몸짓을 인지할 뿐, 그 뒤에 숨은 당신의 귀찮음을 읽진 못한다. 근데 이 글 여러분 상사가 보면 여러분은 못 쓸 듯.
연애를 달달하게 만드는 스티커 활용법
썸타는 사람과 연락을 주고받을 때 스티커를 쓰는 것, 과연 괜찮을까? 아재 나이에 가까운 성인 남자일수록 너무 가벼워 보일 거라는 기우 때문에 스티커를 잘 안 쓴다. 근데 그게 아재가 되는 지름길이다. 그럴 거면 ^^나 ㅠ.ㅠ 이런 것도 좀 쓰지 마. ㅠ.ㅠ
러트거스 대학의 헬렌 피셔 교수는 이모티콘을 자주 사용하는 사람이 성생활도 원활하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인류학 연구하는 분인데 예전에는 첫경험 몇 살이냐 뭐 이런 거 조사하셨다. 취향 엄청 확고하다. 맹신할 순 없겠지만 일리는 있다.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 예컨대 "오늘 저 야근해야 해요"와 "오늘 저 야근해야 해요ㅠㅠ" 두 개의 문장을 비교해보자. 온도 차이가 느껴질 거다. 전자가 "오늘 저 야근해야 해서 당신을 볼 시간이 없어요"라면 후자에선 그보다 강한 아쉬움이 읽힌다.
한 가지 더 팁을 주자면, 스티커를 마구잡이로 쓰기보다 당신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페르소나 스티커를 정해두는 게 좋다. 세뇌의 힘은 무섭다. 상대는 당신이 사용하는 캐릭터가 보일 때마다 눈앞에 당신이 아른거릴 거다.
좋다고 아무 데나 썼다간 큰일 나
스티커의 순기능에 관해서만 얘기했는데, 사실 꾸준히 아무 때나 쓴다고 좋은 건 아니다. 상황에 따라 스티커가 역효과를 낼 때가 있다. 다음과 같은 상황이라면 스티커를 쓰기 전에 한번 고민해보자.
사실 이걸 설명하는 것도 웃기긴 한데, 누가 봐도 이모티콘을 사용해선 안 되는 상황에서 안 쓰면 된다. 그냥 당신이 얼마나 눈칫밥 먹고 사느냐에 달렸다. 예컨대, 군기가 세기로 유명한 체대 학생회 카톡방이라 치자. 화난 선배가 "1학년들, 오늘 내 밑으로 다 집합하라 해라"라고 얘기했을 때, 당신은 "죄송합니다(울음)"라면 이모티콘을 사용할 것인가? "됐어, 오늘만 넘어간다. 다음부턴 조심해라 너희들"이라는 말에 "감사합니다(만세)"라고 대답할 건가?
이모티콘은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분명 감정을 숨기거나 절제해야겠다 싶은 순간이 온다. 이럴 땐 감정 표현에 부스터를 달아주는 이모티콘은 독이 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울음)" 하지 말라는 얘기다. "나 지금 진지해 오빠. 진짜 화났다고(버럭)" 하지 말라는 얘기다.
결국 이모티콘도 '말'이다
앞서 계속 이모티콘을 적절히 쓰는 방법이 있는 것처럼 말했지만, 결국 스티커는 말을 대체할 수 있는 귀엽고 애교스러운 수단일 뿐이다. 받아들이는 사람 역시 스티커를 언어로 받아들인다.
스티커에 기대어 감정표현을 할 수 있지만 그보다 자기 감정을 솔직하고 적극적으로 표출하는 일이 우선이다. 결국 그런 사람이 스티커도 잘 쓴다. 텍스트도 아닌 그림 주제에 인간관계의 팽팽한 텐션을 느슨하게 만드는 매력도 이런 사람 냄새 때문이다. 솔직함이야말로 스티커를 잘 쓰는 지름길이며, 이렇게 쓰인 스티커가 당신의 인간관계를 편안하게 만들어줄 거다. 이렇게 차츰 스티커 덕후가 되어간다면, 손톱만 한 그림이 우리 삶을 개선해주는 놀라운 혁명을 기대해봐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