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ILLUSTRATION. 심재원 부장 (Art Director.INNOCEAN Worldwide)
심재원
아트디렉터, 육아에세이 <천천히크렴>의 저자.
쪽잠 자며 그리는 직장인 아빠의 에세이 <그림에다> SNS 연재 중.
어쩌면 직장인에게 토요일 오전은 정지된 시간이다. 금요일 자정을 넘기는 불금을 보냈거나, 금요일 밤까지의 야근으로 인한 피로가 누적되어 있거나, 주중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금요일 밤 맥주를 마시며 영화를 몰아서 봤거나···.
결국 직장인에게 토요일 오전 시간은 이런 금요일의 일들을 놓고 보건대 재충전을 위해 편안함을 누려야 할 시간일 테다.
하지만 육아가 시작되면서부터 토요일 오전의 예정된 편안함은 없던 일이 되어버린다. 이르면 금요일 저녁부터 육아의 스케줄이 시작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마냥 시체이고 싶은 토요일 오전은 불러도 대답도 없다.
하지만 주말이 단지 피로를 풀 수 없을 지옥이 되어버릴 거라는 예상은 하지 말자. 처음부터 쉽지는 않겠지만 아들과의 이른 아침부터의 일정도 언제나 그랬듯 또 해결책을 찾는 게 아빠들일 테니까···.
그런 해결책 중 하나로 '공원산책'이 있다. 불금의 숙취해소도 안됐는데 웬 산책이냐?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숲의 맑은 산소가 머리를 맑게 해줄 뿐 아니라 숙취해소에도 좋다는 게 이유다.
공원산책의 말머리엔 먼저 창경궁의 오전산책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아들과 함께 홍화문(정문)을 들어서면 명정문을 마주하고 오른쪽으로 꺾는다. 춘당지를 지나 집춘문까지 코스가 우리에겐 메인 산책로다. 이곳엔 산책로와 더불어 산소의 길이 있는 듯하다. 숲이 만들어놓은 통로를 통해 산책로 밖의 뜨거운 공기도 금세 선선한 공기로 바뀌고 창경궁 안의 날다람쥐와 비둘기, 나비도 그 흐름을 아는지 한여름의 불볕더위를 피해 모두 그 안에서 무더위에 지친 몸을 식힌다.
그 안의 공기냄새가 코끝을 간질이면 짜증을 내던 아들도 금세 얌전해지고 지난밤 늦게까지 술을 마신 아빠에게도 이보다 더 좋은 숙취해소가 없는 것이다. 그만큼 이유는 다를지언정 편안함을 주기에 더없이 좋은 것이 공원산책이다.
우리 가족이 처음 보금자리를 마련한 곳은 우면동이다. (우리 가족의 공원산책은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양재천 옆이라 자전거를 시작하기에 접근성이 좋은 점도 한몫했지만 그보다 양재시민의 숲 맞은편에 위치한 문화예술공원이 숨은 보석과 같은 곳이었다. 이곳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만든 공원 같은 느낌이 있다. 공원에 들어와 보면 예상외로 잘 짜여진 공원의 산책로와 생각보다 큰 거목들은 도쿄의 우에노 공원 못지않은 도심공원의 거대함을 선사한다. 이곳을 걷다 보면 공원에 들어서기 전의 많은 스트레스가 나서면서는 '스트레스가 뭐예요?' 하며 나가는 느낌이랄까? 누군가 현대 인류가 발명한 최고의 발명품이 '공원'이라고 얘기하며 그보다 더 귀한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보다 더 널리 이로운 것이 없기 때문일 거라는 이유 있는 정의를 내린 것에 딱 맞는 곳이 이곳 문화예술공원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거대한 서울 도심 공원을 얘기하라면 올림픽 공원이 있다. 너무 뜨거운 불볕더위에 이곳을 가는 건 심히 고려해볼 일이긴 하지만 뉴욕의 센트럴파크 못지않은 거대한 스케일이 주는 편안함이란 이곳이 단연 압권이다. 그 중 더 압권은 해 질 무렵 벤치에 앉아 도심 속 석양을 보는 편안함. 그 장면은 언제고 다시 이곳을 찾게 한다. 늘 우리 가족에게 하루 반나절을 소비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 올림픽 공원이다.
요즘은 좀 뜸해졌지만 아내와 내가 결혼 전부터 종종 찾던 곳이 있다. 하늘공원이다. 지금도 생각나는 것이 고기를 구워 먹으러 갔다가 석쇠나 필요한 물품을 준비해 가지 않아 고생했던 것이 눈에 선하지만 도심의 스카이라인조차 보이지 않는 단지 땅과 하늘이 맞닿아 있는 소금사막과 같은 천인상 역시 잊혀지지 않는다. 아들과 함께 코끼리 열차를 타고 다시 그곳을 찾았을 ? 날이 흐려 충분히 도심 속 뷰의 정적과 고요함을 느끼지 못했지만 조금 더 크면 이곳만의 특별한 여유를 느끼게 해주고 싶다.
어느 공원을 가든 산책이라는 게 다음에 오더라도 그 나무와 물길, 새소리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람을 기다려준다. 행여 모르는 어떤 곳을 걷더라도 그것들은 이미 그곳에 있었다. 그런 편안함은 공원이 주는 매력이자 다시 공원을 찾게 하는 이유가 된다. 삶의 무게가 커질수록 한켠에 커지는 불안함이라는 것까지 안고 살다보니 자연이 주는 여유란 더 절실하고 그게 곧 공원을 자주 산책해야 할 이유가 된다.
얼마 전 서울시청에서 출발해 도보로 종로 D타워를 지나 인사동까지 도심을 산책한 적이 있다. 우리는 가끔 낯선 곳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아 산책한다고 말하는 이들을 본다. 하지만 산책을 통해 그런 결과를 바란다면 그건 어쩌면 착각일 수도 있겠다. 산책은 새로움을 발견하기보다는 원래의 모습들을 보면서 원래의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 행여 모르는 어떤 곳을 걷더라도 그것들이 이미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도심 산책 역시 무언갈 찾기 위한 허덕임의 연장선상이 되기보다는 잊고 있었던 여유를 챙겨보는 것. 그렇게 나를 걸어보는 게 진정한 산책의 이미가 아닐까 싶다.
속도를 줄이고 인생을 즐겨라.
너무 빨리 가다 보면
놓치는 것은 주위 경관뿐이 아니다.
어디로 왜 가는지도 모르게 된다.
-에디 캔터
그런 면에선 어쩌면 집이라는 곳도 공원 공원이나 도심산책 못지않은 역할을 하는 듯 하다. 요즘같이 외출 전에 미세먼지를 체크하고 안 좋은 대기상태로 인해 산책이 줄다 보니 집 안 곳곳이 산책로 역할을 할 때가 많다. (집이 넓다는 얘기는 아님) 어딘들 어떠한가 원래 있던 공간을 다시금 걸어보는 것. 그게 거실이건 부엌이건 안방이건 베란다건··· 아들이 태어나기 전에 이미 내가 있었고 아내가 있었던 것처럼. 아들은 엄마와 아빠 그리고 이 집을 오늘도 (좀 걸어 다니면 좋겠지만) 뛰어다니며 산책 중이다.
내 마음이 산책할 수 있는 곳, 그곳이 공원이든 도심이든 집이든 여유만 찾았다면 그걸로 된 거다.
[AD SKETCH] 그림에다의 일상의 발견 - 편안함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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