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사용설명서 1편: 강석권CD] A Time-Limited Life 방귀는 나오는데 덩어리가 안 나와
다들 그런 경험들이 있을 것 같다.
화장실에 앉아 있다 보면 방귀는 나오는데 덩어리가 안 나온다.
아! 요 끝부분만 쏙 나와주면 속 시원히 대장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변기 속에 쏟아질 것 같은데.
아, 그 간절한 한 부분이 안 나와 계속 속은 답답하고 미치겠는!
내가 요즘 자주 겪고 있는 크리에이티브의 변비현상과 비슷하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다.
그래. 너희가 못 풀어낸다면 내가 풀어내면 되지,
하룻밤 정도 새우면 뭐가 나와도 나오니까.
하지만 요즘은 내가 섭취하는 것이 부실한 건지 세월에 부식이 된 건지
하룻밤을 꼬박 새우고 앉아 있어봐도 여전히 백지장같이 하얗기만 할 때가 많다.
아. 한 꼭지만 나와주면 뭐가 줄줄이 나올 것 같은데.
하지만 끝내 아무것도 안 나오고 마는 그런 날이면 나만 바라보고
먹을 것을 기다리는 순진무구한 장화 신은 고양이 같은 눈망울의 팀원들에게 미안해진다.
그러면 ‘난 여기까지인가’ 하는 실망감과 불안감이 사정없이 몰아친다.
그러다 또 뭔가를 풀어내는 날이면 그래, 아직 난 살아 있어! 봤지? 하며 안도하고 기뻐한다
(물론 전자의 경우가 훨씬 더 많다).
그렇게 조울증에 걸린 것같이 기복의 롤러코스터를 탄다.
어쩔 수 없이 크리에이터는 어느 정도의 시한부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타고난 대로 생을 마칠 것인가, 자기 자신을 잘 관리해서 크리에이터로서의 삶을
연장해갈 것인가 하는 선택이 있을 뿐.
그래서 요즘은 많이 불안하다. 나한테 그 삶이 얼마 안 남은 것 같아서이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내가 좋아하는 광고를 그만둬야 할 때가 올 거라는 생각과,
‘그럼 그 다음에는 뭘 하지? 광고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데’ 하는
막연한 불안감 때문이다. 그래서 쉬지 않고 일하는 것 같다.
왜 이렇게 일을 많이 하냐고 묻는다면, 창피하지만,
여기서 잠깐 멈추면 영원히 멈춰버릴 것 같은 불안감과
서서히 드러나는 내 밑천을 다른 일들로 덮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 솔직한 답일 것이다.
나는 지는 것을 엄청 싫어한다.
술을 많이 마시고 잘 놀아보려 하는 것도,
젊어 보이려 발악하는 것도 모두 점점 나약해지는 것과 나이 듦을 감추려는 것뿐이다.
이렇게 나이 들며 비겁해지는 것 같다. 난 타고난 천재는 분명 아니다.
남들보다 다양한 경험과 자유로움, 그리고 용기가 날 버티게 해줬다고 생각한다.
가끔 크리에이티브의 신께서 강림하여 맨발로 작두를 타듯 일할 때도 있었다.
다만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신은 젊은이들만 좋아하는지 나이가 들수록
접신을 잘 안 해주신다는 것이 섭섭할 뿐이다.
요즘은 그렇게 자꾸 떠나가려는 것들 때문에
제2의 사춘기를 격하게 겪고 있다.
남자는 숟가락 들 힘만 있어도 바람을 피운다고 한다.
나도 그럴 힘만 있어도 광고를 계속하고 싶다.
그래서 하루하루 치열하게 아등바등 사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 삶이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내가 광고라는 일을 하며 얻는 행복과 자부심이
그대로 전달되었으면 한다.
에세이를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계속 살아야만 하는 고단함에 대해서 묻는 것 같다.
지금 내가 계속 크리에이티브할 수만 있다면
나보고 계속 크리에이티브해야만 하는 고단함에 대해서
삶이 얼마 안 남아 하루하루가 소중한 시한부 환자에게
고단하기보다는 행복에 겨워 그 무어라도 기꺼이 내놓을 수 있을 것 같다.
TEXT+DRAWING 강석권 CD
강석권 CD의 다 알려주마
강석권 CD에게 팀원들이 질문했다. 늘 얼굴을 맞대고 치열한 시간을 공유하는 사이지만, 은근하게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강석권 CD가 그 질문에 속 시원하게 답했다.
Q 여자를 볼 때 어디를 가장 먼저 봅니까?
A 이건 김상수 부장의 질문이군요. 상수야, 너랑 같은 곳부터 먼저 본다.
Q 패션 스타일의 영감은 어디에서 얻으세요?
A 특정한 대상에서 영감을 얻는 것은 아니고, 거리를 지나가다 보면 나를 부르는 옷이 있어요. ‘너에게만 어울릴 것 같아’라고 말을 걸어주죠. 제가 사람들과 비슷한 옷 입는 것을 싫어해서요.
평소와 달리 프레젠테이션할 때는 슈트에 코르사주를 달죠. 요즘은 코르사주를 잘 안 하는데, 장미여관 닮았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요.
Q 알고 계신 극강의 폭탄주 제조법을 알려주세요
A 보드카 3에 샴페인 7입니다. 저도 전수받은 제조법인데, 굉장히 깔끔하게 딱 끊겨요. 흐린 기억 없이 깔끔하게 싹둑 잘려요. 최강의 효과를 보장합니다.
Q 몸에 새긴 문신의 뜻이 궁금해요
A 몸에 네 군데 있는데, 양팔하고, 왼쪽 심장이 있는 가슴에는 가족들 이름이 있어요. 오른팔에는 아들, 왼팔에는 딸, 가슴에는 아내 이름을 새겨 넣었는데, 거울 앞에서 양팔을 벌리면 가족의 이름이 일직선으로 연결되죠. 오른 손목에는 체 게바라의 ‘리얼리스트가 되자’라는 말을 스페인어로 새겼어요.
Q 일의 양을 살짝, 아주 살~짝 줄이실 의향은 없는지요?
A 표시 안 나게 줄일 생각은 있어요. 느끼지 못할 정도로? (웃음) 오래 함께하는 팀원도 있고, 새로 온 팀원도 있는데 우리 팀이 고생 많고, 일 많다는 것 알고 있어요. 하지만 힘들어도 풍요로운 연말을 보낼 수 있으니, 나를 믿고 따라와달라고 말하고 싶어요. 나를 믿고 일을 즐겨줬으면 싶어요.
Q 머릿결 관리 비법 좀 알려주세요.
A 머리를 기르는 이유는 짧은 머리가 안 어울려서입니다. 흰 머리가 많아서 염색하는데, 염색할 때는 꼭 와칸으로 해야 머릿결이 덜 상해요. 그리고 머리 감을 때 샴푸, 트리트먼트, 린스, 에센스, 토닉까지 다섯 단계를 거쳐요. 지금보다 더 길었는데, 조니 뎁처럼 하고 싶어서 잘랐는데, 반응은 안 좋아요. (웃음) 그래서 다시 기르고 있어요.
"남자는 숟가락 들 힘만 있어도 바람을 피운다고 한다. 나도 그럴 힘만 있어도 광고를 계속하고 싶다.
그래서 하루하루 치열하게 아등바등 사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 삶이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내가 광고라는 일을 하며 얻는 행복과 자부심이 그대로 전달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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