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Ⅱ] 경험을 믿는 소비자를 움직여라
이제 디지털 시대의 소비자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되짚어 보고, 변화의 본질을 통찰해 소비자에게 새롭게 접근할 때다. 과거에 비해 월등히 스마트해지고, 끊임없이 혁신을 추구하는 소비자를 상징적인 브랜드 이미지로 포장해 주는 건 무의미하다. 자신의 변화를 리얼하게 느낄 수 있도록 실체성 높은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R.e.a.l’이다.
변화의 본질을 보는 눈
GDP 곡선을 살펴봤을 때 인류의 역사 중 200만 년은 별다른 변화가 없었지만, 지난 100여 년은 급격한 변화를 보였다. 이에 따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그리고 생활양식 전반에도 큰 변화가 지속적으로 일고 있다. 해마다 국내의 내로라하는 기관에서 트렌드 키워드를 무수히 쏟아내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트렌드가 많은 게 트렌드인 시대다. 트렌드에 일일이 대응할 수도, 그렇다고 함부로 무시할 수도 없는 상황. 중요한 건 변화의 팩트 그 자체보다 변화에 숨어있는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다. 이제 디지털의 역사와 비슷한 시점에 시작된, 제일기획의 소비자 트렌드 연구를 통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Act Identity, 새로운 정체성의 출현
디지털이 소비자 일상 깊숙이 개입된 현대사회에는 ‘불확실성’과 ‘무한한 가능성’이라는 상반된 가치가 공존한다. 불확실성은 역설적이게도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하는데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발전이 가능한 것이다. 불확실성과 가능성의 동거 속에서 사람들은 조연이 아닌 주연이 되기 위해 발버둥 치며 소위 ‘존재감 강박증’에
시달린다. 디지털이 이끄는 급격한 변화로 인한 무한경쟁 시대에 살면서 존재감에 대한 강한 욕구를 갖게 된 것이다.
존재감 강박증에 시달리는 소비자들에게 몇 가지 증상을 찾아볼 수 있다. 첫째는 남보다 앞서야 한다는 혁신 강박증이다. 1년마다 바꾸는 스마트폰이 이를 단적으로 증명한다. 소비자들은 최신 스마트폰을 사용해야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둘째는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차별화 강박증이다.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다른 사람과 달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더 짙어지고 있다. 요즘 유행하는 ‘에코세대’니 ‘스칸디맘’이니 하는 명명조차 달갑지 않다. 나는 그저 ‘나’일 뿐이니까. 셋째는 변화 강박증이다. 사람들은 사회 변화의 속도에 맞춰 끊임없이 자신을 변화시켜야 비로소 안심한다. 하지만 편집증적인 변화 추구 의지는
심리학적으로 볼 때 큰 위협이 된다. 인간은 본질적 측면에서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항상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변화 의지는 이러한 항상성과 부딪혀 내적 갈등과 위기를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나타난 게 바로 ‘Act Identity(Active + Identity)’, 즉 자기동태성이다.
‘리얼(R.E.A.L)’로 접근하라
자기동태성은 자기정체성(Identity)을 넘어선다는 측면에서 대립관계에 있다. 자기정체성은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을 규정하려고 하지만, 자기동태성은 그러한 규정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단지 변화를 추구하는 의지 자체만이 유일하게 일관된 정체성일 뿐이다. 또한 자기정체성의 시대에는 세상이 만들어 놓은 프레임이 중요했고, 그래서 세상의 눈으로 나를 봤다. 하지만 자기동태성의 시대에는 내가 세상을 보는 프레임이 돼 나의 눈으로 세상을 읽는다. 즉 내가 믿는 것을 보는 게 아니라 내가 보는 것을 믿게 된 것이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는 차별성과 존재감을 지닌 나, 그래서 내가 곧 세상의 기준이 되는 자기동태성 시대의 소비자들은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만을 믿는다. 단언컨대 이제 인식의 법칙은 깨졌다. 인식이 아닌 경험만이 소비자를 움직일 수 있게 됐다.
이제 소비자는 불변의 고착화된 자아정체성 대신 창조적으로 활성화되는 자아동태성을 지향한다. 객관적인 실체도, 실상도 없다.
오직 직면한 경험만이 인식을 지배한다. ‘인식의 법칙’에서 ‘경험의 법칙’으로 사고와 행동의 패러다임이 대전환을 일으킨 셈이다.
그래서 이제 마케터들의 태도와 커뮤니케이션의 목표, 용어, 수단도 바뀌었다. 소비자가 실체적 변화를 체감하도록 유도하지 않고 상징적인 브랜드만으로 포장하는 행위는 이제 설득력이 떨어진다.
1,2. 보해 ‘월’은 웹사이트에 개설한 가상주점을 통해 소비자가 체험하고 즐길 수 있는 새로운 광고의 영역을 선보였다.
3,4. 카누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카페’를 콘셉트로 삼아, 카누를 마시는 순간 마치 카페에 와 있는 듯한 실체적 경험을 유도했다.
5,6. 코웨이의 ‘물 성장 프로젝트’는 제품의 특장점을 알리는 대신 내 아이의 건강을 고민해 주는 진정성을 보여줌으로써 공감을 이끌어냈다.
7,8.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생활 속 이야기를 시리즈로 펼쳐낸 박카스 광고는 광고가 소비자의 일상생활 속에 자리 잡아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제일기획은 인식이 아닌 경험만을 믿는 소비자를 움직일 네 가지 동력을 정립했다. R.E.A.L, 즉 리얼리티(Reality), 경험(Experience), 진정성(Authenticity), 라이프 셰어(Life ShareTM)가 바로 그것이다.
Reality: 소비자는 이제 보지 않으면 믿지 않는다. 사람의 시선을 끌어내는 힘은 이미지가 아니라 실체 속에 있다. 과거에는 리얼리티가 정품이냐 ‘짝퉁’이냐를 가리는 의미로 사용됐지만, 이제 리얼리티는 진짜와 가짜를 넘어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로 치환되었다.
Experience: 이제는 소비자가 보고 만질 수 있도록, 가까이에서 체감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실제 경험이 아닌 가상 경험을 통해서라도 궁극의 목표는 체험이다. 보해 ‘월’은 일반적인 광고의 영역을 넘어 소비자 스스로 접하고 즐기는 새로운 접점을 선보인 점에 주목 받았다. 보해는 ‘지친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로한다’는 힐링
콘셉트로 인터넷에 가상주점을 선보였고, 이곳을 통해 배우 한가인이 소비자의 친구가 되어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거나 그녀가 추천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가상 체험을 유도했다. 카누 또한 ‘세상에서 가장 작은 카페’를 콘셉트로 삼아 카누가 있는 곳은 언제 어디나 작은 카페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Authenticity: 소비자를 속이기엔 이제 정보가 너무 많다. 그럴싸한 메시지가 아니라 진심을 보고 싶은 열망을 채워주는 진정성으로 소구해야 할 때다. 코웨이 ‘물 성장 프로젝트’는 제품의 특장점을 넘어 내 아이의 건강을 고민해 주는 진정성을 보여줬으며, 이를 통해 아이들의 건강한 변화와 바른 성장을 화두로 이끌어내며 소비자에게 다가가 이슈를 만들어 냈다.
Life ShareTM: 언제까지 소비자를 끌어당길 것인가. 시장 점유(Market share)나 인지 점유(Mind Share)가 아닌 일상 점유(Life ShareTM)를 통해 경쟁의 범위를 넓히는 방법을 고민할 시기다. 박카스는 피로 회복에 관한 생활 속 이야기를 통해 대한민국 국민의 전폭적인 공감을 이끌어낸 대표적 사례다. 광고는 이제 소비자의 인식 속에 자리 잡는 대신 소비자의 일상생활 속에 자리 잡아야 한다.
일상 속 소비자의 실체적 경험을 강조한 ‘R.E.A.L’로 접근했을 때야말로 끊임없이 변화하려는 이 시대의 소비자를 움직일 수 있고, 그런 노력이 있어야 소비자 또한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 움직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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