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를 만드는 일은 누구나 재미있어 한다. 너무 재밌는 나머지, 많은 돈을 내서 전문가에게 맡기면서 자신이 직접 표현 아이디어를 내기도 한다. 그것은 재미있을 것 같아서 외과의사에게 메스를 잠깐 빌려서 내가 내 배를 열어보는 것과 같다. 그러다보니 전문가의 손을 떠난 아이디어는 자주 집을 나가곤 하는 것이다. 결국 광고에서 알맹이는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게 된다. “아이디어는 먼 곳에”다.
외국계 광고대행사에 들어갔다.
처음으로 아이디어를 발표하는 날. 준비한 아이디어를 열심히 팔았다. 내심 이 정도면 자신 있다고 생각한 순간, 기획팀의 스티븐이 묻는다. “Sangsoo! What is the idea?” 몇 초간의 정적. ‘바보 아냐?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여태 다 들었으면서.’ 물론 엉성한 영어 때문에 원하는 아이디어가 제대로 전달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질문은 그런 뉘앙스가 아니다. ‘무슨 소리지? 아이디어를 듣고 나서, 아이디어가 뭐냐고?’ 내가 발표한 아이디어는 모두 “실행(execution) 아이디어”라는 것이다. 아하! 그에게 배웠다. 그때까지 나는 그런 구분 없이 그냥 아이디어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광고 아이디어(idea)는 우리가 말하는 아이디어다. “무엇을 말하지?”에 해당하는 핵심 메시지다. 그러나 실행 아이디어란 유명한 모델, 멋진 배경, 음악, 화면의 색감, 의상, CG 등 ‘실행’을 위한 아이디어를 말한다. 아이디어를 ‘말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그러고 보니 요즘 우리나라 광고는 “무엇을 말할 것인가?”보다는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에 훨씬 더 신경을 쓴다. 이유는 단순하다. 똑똑한 아이디어를 찾는 일은 어렵고, 실행은 쉽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광고를 만들면서 핵심 메시지와 기대반응을 챙겨야 할 광고주 담당자나 대행사의 크리에이티브 팀마저도 표현에만 에너지를 쏟는다.
무언가를 만드는 일은 누구나 재미있어 한다. 너무 재밌는 나머지, 많은 돈을 내서 전문가에게 맡기면서도 자신이 직접 표현 아이디어를 내기도 한다. 그것은 재미있을 것 같아서 외과의사에게 메스를 잠깐 빌려서 내가 내 배를 열어보는 것과 같다. 그러다보니 전문가의 손을 떠난 아이디어는 자주 집을 나가곤 하는 것이다. 결국 광고에서 알맹이는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게 된다. “아이디어는 먼 곳에”다.
아름답고 재미있는 실행 아이디어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아울러 실행 아이디어가 뛰어나면, 핵심 아이디어가 엉성해도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광고를 그런 취미활동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부러운 일이다. 예산이 넉넉해서 그럴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브랜드는 그렇지 못하다. 막대한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비용과 시간을 화장하는 일에만 쏟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예상 고객에게 예쁘게 보이는 것은 참 중요하다. 그러나 설득적으로 다가가는 일이 조금 더 중요하다.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강력한 아이디어 개발에 조금 더 써야 할 때다.
박카스 아이디어, 인생의 단면 절묘하게 포착!
실행도 뛰어나지만, 속에 숨은 아이디어가 강력해서 깊은 인상을 남기는 아이디어가 있다. 노부부가 등장하는 ‘박카스’ 광고가 바로 그것이다. 아이디어의 강도가 세다. ‘인생의 단면(slice of life)’을 절묘하게 포착하여 두고두고 기억하게 한다. 물론 젊은 소비자들은 자극적인 것을 좋아하니까 이 광고를 좋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서는 모두 똑같다. 연령 차이를 뛰어넘게 되는 것이다.
모든 젊은이가 힙합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노인이 아리랑을 듣지는 않는다. 이 광고는 살아가면서 흔히 보지만 포착은 어려운 장면을 잘라내 짧은 시간에 무리 없이 잘 녹였다. 보지는 않았지만, 오디오 레벨도 전반적으로 낮을 것이다. 우리의 눈과 귀를 필요 이상으로 자극하지 않아 경계심을 없앤다. 전혀 하지 않은 듯 자연스러운 연기는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다.
사실 그쯤 되면 감독은 할 일이 없어진다. 생각의 과잉도 문제지만, 연출의 과잉도 문제인데, 연출 한 듯 하지 않은 듯 보이도록 뒤로 잘 숨었다. 그대로 가기에는 아무래도 심심해 보여 무언가 덧칠을 하고 싶었을 텐데 잘 참았다. 또 “당신의 피로회복제”가 무엇이냐고 묻는 이 캠페인은 ‘캠페인의 힘’을 잘 활용하고 있어 본받을 만하다.
오길비의 조언대로 브랜드를 위한 캠페인은 ‘장기계획(long term solution)’여야 한다. 담당자 모두가 그만둬도 계속돼야한다. 우리가 잘 아는 세계적 브랜드 중에는 100년 이상 같은 캠페인을 하는 것들이 많다. 그렇게 하려면 한 가지 약점만 극복하면 된다. 아무래도 우리는 비슷한 것을 계속 보면 쉽게 피로감을 느낀다는 점이다. 장기캠페인을 하면서 우리에게 진정한 ‘피로회복제’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박카스의 또 하나의 숙제다.
포르테 아이디어, 강력한 반전의 묘미!
기아자동차의 신차 ‘포르테’는 다른 식으로 강력하다. 일단 이 광고는 강한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만들었는지, 실행 아이디어가 돋보이는지 가리기가 쉽지 않다. 잘 만들었다는 뜻이다. 15초 안에 강한 인상을 줄 수 있다면 앞의 이야기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시작은 여느 자동차 광고처럼 평범하지만, 강력한 반전의 설정으로 깊은 인상을 준다. 사실 ‘작지만 강한 차’와 ‘사치스러운 고급차’의 대결구도는 공식이다. 별로 새로울 것이 없다. 그러나 이 광고를 보고 나면 통쾌한 느낌이 든다.
도로에 넘치는 고급 수입자동차들은 욕망의 대상이다. 아울러 공포의 대상이다. 문짝이라도 스치면 200만원이다. 범퍼를 받아도 100만원이 든다. 그런데 새로 나온 이 차는 그런 차들을 그냥 잡아 먹어버린다. 고급 자동차를 타는 이들이 보면 우습겠지만, 적어도 1600cc급인 이 차의 예상 고객들은 쾌감을 느낄 것이다. 물론 이 차를 사서 타고 다니는 이들이 실제로는 아무도 들이 받지 않을 것이므로 고급 자동차 주인들은 안심해도 된다. 누가 새 차로 남의 차를 받겠는가?
이 광고가 노리는 고객은 대한민국 1%가 아니다. 99%의 보통 사람들이다. 이 차를 사건 사지 않건 간에, 특별할 것 없는 보통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아이디어다. 호텔 앞에 미끄러지듯 들어오는 차에서 성공한 것으로 보이는 주인공이 내리면 도어맨이 분을 열어준다는 설정은 지루하다.
그런데 이 광고는 단순 대결구도에서 시작했지만 이런 코드를 담고 있어 보는 이들에게 ‘통쾌함’이라는 색다른 재미 하나를 추가했다. 옥의 티가 하나 있다면, 기교가 현란해 눈에 띄는 편집이다. 샷(shot)을 지나치게 잘게 잘라서 붙이는 바람에 단순함이 반감됐다. 반전을 놓치지 말고 보라고 요구하는 의도가 살짝 드러난다. 그러나 그런 편집 스타일에 눈이 익숙한 젊은 고객들에게는 그다지 문제되지 않을 수도 있다.
[방송]아이디어는 먼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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