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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재미있는 얘기가 없으면 넘어지기라도 하라
오길비 앤 매더 정상수 상무
개그맨 김재동 씨에게 “사람들을 웃기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으냐?”고 묻자 그렇게 대답하더군요. 웃길 자신이 없으면 무대로 나가면서 슬쩍 넘어지는 시늉이라도 하라고요. “아하, 그렇지. 저 순발력!” 멍하니 기다리던 사람들의 주의를 끌고 마음을 열게 하는 작전이지요. 물론 지식 수준이 높은 분들은 슬랩스틱 코미디보다 지적인 코미디를 높이 평가하지만, 어쨌든 멀쩡한 사람이 갑자기 넘어지면 늘 재미있거든요. 아, 남들의 주의를 끌기란 왜 이리 어려운지요. 볼 거리가 워낙 많아진 시대라 사람들은 이제 웬만한 자극에는 눈길도 주지 않습니다. 광고 만들기도 점점 어려워지지요. 고백컨대, 저도 이 글의 헤드라인을 어떻게 뽑아야 많은 분들이 집게 손가락을 움직여 주실까 하고 매일 연구합니다. 광고는 광고에 관심 없는 독자를 겨냥하니 어렵고, 이 글은 대부분 광고계의 “선수”들을 염두에 두고 쓰니 더 어렵군요. 오늘도 여러 나라의 오길비 오피스에서 만든 광고 중 저의 주의를 끈 광고를 몇 편 소개 드립니다.

사웅 파울로에서 만든 도브 샴푸의 포스터. 오래오래 연구해서 철학적인 아이디어를 내는 수도 있지만, 이건 아주 쉽게 잘 풀었군요. 아트 디렉터의 눈이 상당히 뛰어나죠? 잘 한 점 세 가지: 1. “놀라움”을 주면서도 “아름다움”을 잘 살림. 2. 상상력을 십분 발휘하여 매체를 슬기롭게 사용함. 3. 시선의 흐름을 잘 계산한 제품의 위치. 하나 추가하자면 예쁜 모델을 잘 찾은 점. 사실 2D와 3D를 합성하는 방법은 많이 써왔지만, 이건 정말 거부감이 전혀 들지 않는 멋진 결합입니다. 자연스러운 덩굴과 잘 계산된 얼굴의 각도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는군요. 보통 헤어 디자이너보다 머리를 더 잘 했어요. 저도 길을 가다가 담쟁이 덩굴을 가끔 보는데, 멋있다고 속으로만 생각하며 그냥 지나쳤지 이런 상상은 못 했거든요.

같은 브랜드를 위한 다른 시도. 요하네스버그에서 만든 도브 “크림 바(cream bar)” 광고입니다. 3B는 늘 효과를 발휘한다며 아이디어마다 무조건 동물을 등장시키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고양이를 참 슬기롭게 등장시켰습니다. 연전에 홍콩 크리에이티브 팀이 비슷한 TV 광고를 만든 적이 있었지요. 한가로이 낮잠을 자고 있는 여성에게 고양이가 고양이 걸음으로 사뿐사뿐 다가갑니다. 고양이는 혀를 내밀어 잠자는 여성의 볼을 살짝 핥습니다. 작은 글씨의 자막이 페이드 인됩니다. “우유 2% 함유. 도브 바” 그 아이디어의 인쇄 광고를 아프리카에서 만들었군요. 광고주 이름이나 로고도 과감히 생략. 스토리와 화면의 중심에 이미 나와 있으므로. 또 나이키도 그러니까. 세계적 브랜드의 자신감과 오만함?

싱가포르에서 생각해 낸 쿨 민트 향의 구강관리제품 리스테린의 광고. 제목을 “소변 구취(piss breath)”라고 붙였습니다(그런데 광고에 제목이 필요하긴 한가요?). 1917년에 마르셀 뒤샹이 소변기를 하나 눕혀 놓고 “샘(The Fountain)”이라는 제목을 붙여 전시해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는데(전시회 내내 전시장 뒤에 치워 놓았다죠?), 이건 한 술 더 뜨는군요. 게다가 의도했건 하지 않았건 다른 코드가 하나 더 들어있어 우리를 재미있게 하거나 불편하게 합니다. 어쨌든 “입 냄새에는 리스테린”이라는 메시지를 짧은 순간에 확실하게 보여주는 아이디어. 싱가포르에서는 츄잉 검을 씹지 못하게 한다니 장사가 더욱 잘 되겠네요.

“신선놀음에 도끼 자루 썩는지 모른다.”라는 속담을 비주얼로 표현했습니다. 역시 싱가포르에서 제작. 아직 어려서 퇴장할 시간이 안 되었는데 부르러 온 줄도 모르고 “게임 삼매경”에 빠져 있는 주인공. 그냥 “게임보이” 였으면 시간이 흐른 것을 눈치챘을지도 모르지만, 이건 게임보이 “어드밴스” 라서 정말 시간가는 줄 몰랐다는 걸까요? 다른 편에는 두 발을 호수에 담근 채 게임에 빠져있는 소년이 나옵니다. 물론 물 속에서 식인 물고기들이 다리의 살을 뜯어 뼈만 보이지요. 이 광고를 보신 어른들의 말씀이 들려오는 듯 합니다. “에이구, 공부를 저렇게 열심히 했으면…” 그런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회의실에서 이런 아이디어를 내면 팔렸을까요? 아마 스크립트로 썼거나 말로만 설명했다면 팔지 못했을 겁니다. 일단 만들어서 보여주지 않았을까요? 우리끼리 얘기지만, 광고를 만들다 보면 도식적이고 유치할 수도 있는 아이디어였는데 아트 디렉션의 완성도가 뛰어나서 용서 받는 경우가 꽤 많이 있지요.

멀리 아르헨티나에서 만든 “매치박스” 경주용 자동차 시리즈 광고. 미니카니까 갖고 노는 데는 실제로 두 손가락만 필요하지요. 비록 미니카를 갖고 놀지만, 기분은 레이서! 저는 타겟도 아닌데 제품을 보여주지 않으니 더 궁금하네요. 또 더블 페이지 스프레드의 레이아웃을 할 때마다 그림 한가운데가 잘리는 게 싫어서 고민인데, 면 분할도 적절히 해서 그 문제를 극복했군요.

말레이지아에서 제작한 포스트 시리얼 광고. 역설적인 발상이어서 재미 있습니다. 진짜 딸기로 만들었다는데 딸기는 아래 쪽에 있으니까요. 딸기들이 힘을 다해 제품으로 올라가기라도 해야겠군요. 쉬운 사실을 말 그대로 쉽게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인쇄광고인지 앰비언트(ambient) 미디어의 활용인지 잘 모르겠네요. CD를 다음에 만나면 물어봐야겠습니다.

암 환자 지원협회의 광고. 인도의 뭄바이에서 만들어 상도 많이 받았습니다. 논문의 각주가 본문보다 더 길 수 밖에 없습니다. 담배의 폐해가 그 정도로 심하니까요. 제작비도 별로 들지 않았군요. 담배 안에 뭐가 들었는지 다 읽어보고 무서워서 한 대? 뭐 이렇게 겁 준다고 내가 끊을 것 같냐고 하시겠지만, 일찍 끊을수록 더 큰 기쁨을 빨리 얻을 수 있으니 혹시 아직도 피우신다면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아니면 다음 광고에서 한 말씀 더!

“암이 흡연을 치료해 줍니다(Cancer cures smoking.)”. 당연하지요. 일단 암에 걸리면 끝으로 가는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니까 흡연쯤이야 아무 것도 아니겠지요. 역시 뭄바이의 같은 팀이 낸 아이디어입니다. 이 장면에서 “나 죽은 다음에 천만금을 받으면 뭐해?” 라는 보험회사 카피가 생각납니다. 죽기 전에 잘 삽시다.

칠레에서 만든 단편영화제 광고. 기껏 해야 1분에서 3분 간격으로 영화를 상영합니다. 그럴 리야 있겠습니까만 “단편영화” 이야기를 귀엽게 잘 표현했네요. 정말 우리와 너무 다르죠? 물론 딴 나라의 광고가 모두 이렇지는 않겠지요. 가격할인 광고나 프로모션 광고도 있고, 유치해서 2초도 못 봐 줄 광고가 더 많겠지요. 하지만 부럽습니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광고라는 매체를 저렇게 여유 있게 사용한다는 사실이 말입니다. 저도 이런 걸 고민해야 하나 하고 하루에 몇 번씩 회의를 느끼지만 국력이 약하니 어쩌겠습니까? 우리의 아이디어가 국제적 광고 창작기준(정확히는 국제적 “광고제” 창작기준)에 의해 재단 당할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니 우리가 힘을 키워 그 기준을 바꾸거나, 칼 들고 나가서 챙챙 소리 내며 싸워야 하는 것이지요. 머리가 나쁘거나 상상력이 부족하니 저도 사람들의 주의를 끌기 위해 앞에 나가다가 넘어지기라도 해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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