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말 그랬다.
대학을 졸업하고 시작한 직장생활은 끝나지 않는 격무의 연속이었다. 초년병 잡지기자의 삶은 폭폭하다 못해 죽을 만큼 힘든 생활의 무한 반복이다. 마감이면 피할 수 없는 밤샘 작업과 도제식으로 배우는 가장 낮은 수준의 자투리 업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무한의 일더미 속에서 나는 하루하루 시들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나를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은 달랐다. 취업하기 어렵다는 국어국문학과 졸업생, 졸업 전에 딸 수 있는 자격증은 ‘운전 면허증’과 ‘교사 자격증’이라며 자조적인 우스갯소리를 하던 선배들, 하늘의 별따기인 임용고사를 준비하거나 기약 없는 사립학교 교원 발령을 기다리는 동기들 사이에서 전공을 십분 활용할 수 있는 ‘잡지기자’라는 내 직업은 충분히 그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을 만했으니까.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연일 계속되는 야근으로 눈 밑 다크써클은 무릎까지 내려올 지경이었고, 야식과 스트레스는 내 몸을 풍선처럼 부풀게 만들었다. 무릎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운동할 시간은 억지로라도 내기 힘든 지경이니 식단을 조절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선택한 식단은 두부와 다시마. 사 먹는 대신 도시락을 싸서 출근했고, 반찬으로는 두부와 다시마를 빼놓지 않았다. 독한 마음으로 다이어트를 시작한 지 3개월, 몸무게는 두 자리 수가 줄었고, 입던 옷이 커질 정도로 살이 빠졌다.
쾌재를 부르며 나는 두부 예찬론자가 되었다. 그런데 그 후 석연찮은 뉴스가 종종 터져나왔다. 두부를 만드는 콩이 유전자변형을 했다느니, 두부에 유해한 물질이 많이 첨가됐다느니, 수입산콩에 엄청난 양의 약품 처리를 한다느니 따위의…. 그럴 때마다 왠지 배신감이 느껴졌다. 연약하기 짝이 없는 순백의 두부 속에 담긴 추악한 진실을 외면하고만 싶었다. 어느새 내 식단에서는 두부가 사라졌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이름도 찬란한 고소영 씨가 두부 포장을 통째로 들고 거기 담긴 국물을 쭉~들이키는 광고를 보게 되었다. 충격이었다. 시장에서 파는 판두부에서 마트에서 파는 포장 두부까지 수많은 두부를 섭렵했지만 포장재 안에 있는 물을 먹을 생각은 해본 적도 없기 때문이었다. 물을 버리고 흐르는 물에 씻고, 그것도 모자라 끓는 물에 살짝 데쳐 먹었던 두부, 그마저도 온갖 유해 논란이 있은 후에는 장바구니 목록에서 사라졌던 두부이건만, 그걸 우리의 소영 씨는 국물째 마시고 있다!
연출된 상황이겠지만 왠지 신뢰가 갔다. 저 정도 자신 있는 두부라면 먹어도 괜찮겠다는 마음의 소리가 들렸다. 그 후 나는 다시 두부를 먹기 시작했다. ‘광고 따위엔 절대 현혹되지 않을 거야!’ 호언장담하던 나였지만 ‘행복한 콩’으로 만든 ‘행복한 두부’는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오늘도 나는 노릇하게 구운 두부 반찬을 먹는다. 고소하고 담백한 그 맛이 입 안에서 떠나지 않는다. 아무래도 죽을 때까지 두부를 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래, 나는 행복한 두부 바보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연일 계속되는 야근으로 눈 밑 다크써클은 무릎까지 내려올 지경이었고, 야식과 스트레스는 내 몸을 풍선처럼 부풀게 만들었다. 무릎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운동할 시간은 억지로라도 내기 힘든 지경이니 식단을 조절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선택한 식단은 두부와 다시마. 사 먹는 대신 도시락을 싸서 출근했고, 반찬으로는 두부와 다시마를 빼놓지 않았다. 독한 마음으로 다이어트를 시작한 지 3개월, 몸무게는 두 자리 수가 줄었고, 입던 옷이 커질 정도로 살이 빠졌다.
쾌재를 부르며 나는 두부 예찬론자가 되었다. 그런데 그 후 석연찮은 뉴스가 종종 터져나왔다. 두부를 만드는 콩이 유전자변형을 했다느니, 두부에 유해한 물질이 많이 첨가됐다느니, 수입산콩에 엄청난 양의 약품 처리를 한다느니 따위의…. 그럴 때마다 왠지 배신감이 느껴졌다. 연약하기 짝이 없는 순백의 두부 속에 담긴 추악한 진실을 외면하고만 싶었다. 어느새 내 식단에서는 두부가 사라졌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이름도 찬란한 고소영 씨가 두부 포장을 통째로 들고 거기 담긴 국물을 쭉~들이키는 광고를 보게 되었다. 충격이었다. 시장에서 파는 판두부에서 마트에서 파는 포장 두부까지 수많은 두부를 섭렵했지만 포장재 안에 있는 물을 먹을 생각은 해본 적도 없기 때문이었다. 물을 버리고 흐르는 물에 씻고, 그것도 모자라 끓는 물에 살짝 데쳐 먹었던 두부, 그마저도 온갖 유해 논란이 있은 후에는 장바구니 목록에서 사라졌던 두부이건만, 그걸 우리의 소영 씨는 국물째 마시고 있다!
연출된 상황이겠지만 왠지 신뢰가 갔다. 저 정도 자신 있는 두부라면 먹어도 괜찮겠다는 마음의 소리가 들렸다. 그 후 나는 다시 두부를 먹기 시작했다. ‘광고 따위엔 절대 현혹되지 않을 거야!’ 호언장담하던 나였지만 ‘행복한 콩’으로 만든 ‘행복한 두부’는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오늘도 나는 노릇하게 구운 두부 반찬을 먹는다. 고소하고 담백한 그 맛이 입 안에서 떠나지 않는다. 아무래도 죽을 때까지 두부를 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래, 나는 행복한 두부 바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