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는
재미있는 일인가.
글 · 그림
임태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제일기획
“광고가 재미있나?”라는 질문에는 망설임 없이 “그렇다”고 대답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왜 재미있냐?”는 물음에는 잠시 멈칫하게 됩니다. 매번 새로운 걸 생각하고 만들어야 하는 일이니 당연히 재미있고, 업무차 해외에 나갈 기회가 생긴다거나, 좋아하는 셀러브리티를 만날 수 있는 것도 즐거움을 주는 요소 중 하나일 겁니다. 그런 특별한 순간들이 분명 존재하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다양한 요소들이 얽혀 있음에도, 그 모든 재미 중 하나만 꼽으라면 “많은 전문가들이 모여 함께 무언가를 완성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를 들고 싶습니다. 촬영, 편집, 연출, 미술, 조명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는 것, 그리고 그 노력들이 하나의 결과물로 완성되어 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과정에서 오는 만족감이 크더라는 겁니다. 물론 그 과정이 언제나 순탄한 것은 아니죠. 프로젝트가 무산되거나, 일정이 엉키거나, 스트레스를 감당해야 하는 순간도 많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해냈다는 성취감 이야말로 이 고되고 복잡한 일을 계속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얼마 전엔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프로젝트 하나를 진행할 때, 우리는 과연 몇 명의 사람을 만나게 될까? 대행사 제작 입장에서, 캠페인의 기획부터 완성까지 만나는 사람 수를 대략 세어보았더니… 생각보다 훨씬 많더군요.
가장 전형적인 사례인 ATL TVC 하나를 기준으로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제작팀이 처음 접촉하는 건 클라이언트 담당 AE와 AP입니다. 오티를 받고, 히스토리를 듣고, 전략을 리뷰하면서 최소한 여섯 분 정도를 만나게 됩니다. 그다음엔 아이디어를 만들기 위해 팀원들과 브레인스토밍을 하게 되죠. 풀원, 아트, 카피 등 네 명 정도가 기본으로 움직입니다.
아이디어가 어느 정도 정리되면 콘티라이터와 작업을 시작하고, 이후 광고주 실무진 다섯~여섯분, 임원 보고까지 포함하면 서너 분은 더 만나게 됩니다. 안이 확정되면 프로덕션 단계로 넘어가며 PD, PM, 연출팀과 아트, 촬영, 미술, 조명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의 미팅이 이어지죠.
그리고 드디어 촬영 날. 이때가 사람을 가장 많이 만나게 되는 피크타임입니다. 촬영팀, 조명팀, 오디오팀, 연출부, 아트팀, 그립팀, 케이터링팀은 물론, 셀럽이 있다면 매니저와 에이전시, 헤어·메이크업팀까지. 적게 잡아도 40명 이상은 되는 인원입니다. 이후 후반 작업에 들어가면서 편집, 색보정, 녹음까지 포함하면, 한 프로젝트를 통해 직접 면대면으로 만나는 인원은 평균 150명 정도에 이릅니다.

저는 광고 제작 과정 중에서도 ‘촬영하는 날’을 가장 좋아합니다. 가장 많은 팀이 모여, 하나의 목표를 위해 톱니바퀴처럼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정말 즐겁습니다. 물론,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거나 돌발 변수가 생기면 지옥의 문이 열리기도 하지만요.
그렇기에 저는 이 일이 ‘협업’이라는 단어의 진짜 의미를 실감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얽히다 보니, 서로가 어떤 일을, 왜 하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전체 스케줄이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 각 프로세스가 어떤 흐름으로 이어지는지, 그중 내가 맡은 부분은 무엇이며 어떤 다른 작업과 연결돼 있는지를 아는 것이 핵심입니다.
광고라는 직업은 힘들고 고된 일입니다. 순발력도 좋아야 하고 체력도 좋아야 하고, 공부도 많이 해야 하죠. 타고난 재능과 노력을 요하는 전문직입니다. 게다가 그런 전문가 여럿이 모여서 하는 공동 작업이죠. 중간중간 트러블도 많고 서로 협의해야 하는 일들도 많고. 여러모로 스트레스가 많을 수 밖에 없는 일입니다.
반면 그 스트레스를 이겨낼 만큼 재미있는 일이기도 하구요.
반면 그 스트레스를 이겨낼 만큼 재미있는 일이기도 하구요.
일을 하다 보면 유난히 여유 있어 보이는 분들을 만날 때가 있는데, 그런 분들일수록 다른 파트에 대한 이해도가 높더라고요. 그 분들은 자신의 일만이 아니라, 이 일이 전체 프로젝트 안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아시는 겁니다.
진화생물학자 최재천 교수님이 자주 하시는 말씀이 있다죠.
진화생물학자 최재천 교수님이 자주 하시는 말씀이 있다죠.
“알면 사랑한다.”
광고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서로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그 역할이 무엇인지만 이해해도 이 고되고 복잡한 일, 광고라는 세계를 조금 더 사랑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