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석 자 뒤 ‘아트디렉터’라는
다섯 글자가 붙기까지
글 박경민 아트디렉터 | 런랩
믿을 수 있는 건 하나뿐인 몸뚱이
뭐 하나 쉽게 얻은 것이 없었습니다. 지난 2년은 제 인생을 통틀어 가장 치열했고, 동시에 가장 많은 것을 깨달은 시간이었습니다. 매일 자신과 맞서 싸우며, 결국은 자신을 조금씩 단단하게 만들어가던 시절이었습니다.
디자인과라면 누구나 마주하는 졸업 전시라는 거대한 벽을 저는 좋아하는 여행에서 ‘오버투어리즘’이라는 주제로 풀어내며 넘어설 수 있었습니다. 밤새운 날이 잠든 날보다 많았고, 그 모든 노력이 원하는 결과로 돌아오지 않는 날도 셀 수 없이 많았습니다. 의지할 곳이라곤 자신뿐이던 때였습니다.
그럼에도 한 번 마음을 먹으면 끝을 봐야 하는 고집스러운 성격 덕분에, 결국 저는 인턴이라는 자리까지 걸어갈 수 있었습니다. 여름 방학에 어떻게든 인턴을 해내고 싶어 마지막 날까지 도전했고, 마침내 휴학 신청을 누르기 직전에 합격 소식을 들었습니다. 치열한 경쟁률을 뚫어 대기업 인턴이 됐다는 사실도, 늘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던 광고의 과정을 눈앞에서 직접 마주한 것도, 모든 순간이 저에게는 낯설고도 설레는 경험이었습니다.
그 시간은 저에게 ‘혼자 서는 법’을 가르쳐준 나날이기도 했습니다. 원하는 목표 하나가 힘든 한 해를 버틸 수 있는 동력이 됐고, 그 목표가 제 마음을 조금 더 단단하게 다져주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제 주변엔 늘 제 아이디어를 들어주던 친구들, 전시가 아니라 잔칫집이냐며 어깨가 올라가게끔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찾아와준 많은 사람들, 조언을 건네주던 어른들이 있었습니다. 그 존재들 덕분에 저는 한 해를 따뜻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인턴에서 아트디렉터로
목표를 이뤘지만, 욕심은 여전했습니다. 인턴 후 곧바로 아트디렉터가 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퇴근 후마다 틈틈이 준비해 온 덕분에 찾아온 좋은 기회를 단숨에 잡을 수 있었습니다. 연초까지 숨 가쁘게 달린 결과, 결국 바라던 업계에 발을 디딜 수 있었습니다. 여전히 신기한 모두가 분주한 촬영 현장, 처음 집행했던 ‘아하’ 광고가 온에어 되어 거리의 옥외 매체에서 마주했던 순간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스쳐 지나가던 풍경 속에 제가 만든 장면이 나타났을 때 묘한 실감이 들었죠. 그 이후에도 참여한 광고들이 곳곳에서 보일 때면 주변에서 봤다며 사진을 보내줍니다. 그럴 때마다 조용히 기쁘고, 작은 뿌듯함이 오래 남습니다. 결국 저는 그런 뿌듯함으로 먹고 삽니다.
배우고 흔들리며 성장하는 9개월 차
어느새 9개월 차 아트디렉터가 됐습니다. 아직은 어렵고, 배울 것이 넘치는 시기입니다. 고민한 시간과 결과물이 비례하지 않을 때도 많고, 아무리 애써도 아이디어가 손에 잡히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방향을 잃어 힘이 빠지기도 하고, 제 부족함을 마주할 때마다 마음이 내려앉을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시간들은 분명 성장의 흔적을 남기고 있습니다. 마치 삶의 변곡점에 서 있는 듯한 지금, 두려움 속에서도 계속 배우고 싶습니다. 몸도 마음도 이 업계에 적응해가는 1년 차의 성장통이라 믿으며, 앞으로의 시간들을 묵묵히 견디고자 합니다.
이름에 향을 더하는 일
광고라는 일은 프로젝트마다 다른 세계를 마주하고, 그때마다 카멜레온처럼 필요한 지식을 흡수해 전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입니다. 물론 쉽지 않은 길이기에 지치고 해이해질 때면, 저는 다시 제가 어떻게 이 자리까지 오게 됐는지 돌아봅니다. TVCF 검색창에 ‘박경민’이라는 세 글자가 뜨는 날을 꿈꾸며 이어온 노력을요.
사람은 하루의 3분의 2를 일에 쏟습니다. 그 시간을 단지 도구적이거나 수단적인 것으로 소비하고 싶지 않습니다. 힘든 노동 속에서 즐거움을 찾지 못하면, 이 일을 오래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똑똑한 사람보다 이 일을 즐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누가 봐도 “이건 박경민 아이디어네”라고 말할 수 있는, 향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지금은 그 향을 찾는 과정에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