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말 윤종신이 밉다. 죽을 만큼 밉다, 싫다. 미치도록 내가 싫다. 아침에 눈을 떠서 밤에 잠들 때까지 하루에 족히 수백 번은 입에서 자동적으로 튀어 나오는 "영계백숙! 오오오오~"라는 가사 때문이다. '무한도전 - 강변북로 가요제' 편을 볼 때만 해도 다른 작곡가들과 달리 밤낮을 가리며 일한 윤종신이 너무 성의 없게 작곡한 것 같아 아쉬웠고, 결정적으로 애프터 스쿨을 들러리처럼 뒤로 세워두고 정준하가 전면에 부각되는 것이 못마땅했다.
당연히 유재석, 타이거JK의 '퓨처라이거'와 박명수, 제시가의 '냉면'이 가장 마음에 들었지만, 지금 내 입에선 계속 '영계백숙 오오오'만 무한 오토리버스다. 영화기자로서 못 만든 신파영화를 보며 우는 내가 미운 것처럼 정말 미치도록 내가 싫은 거다.
그런데 얼마 전 노래방에 갔을 때 나도 모르게 가장 먼저 '영계백숙'의 번호를 누르고 있었다. 흥얼거리다 보니 그 자체로 내 인식체계에 저장이 돼버렸고 순간적이나마 노래방 책에 영계백숙이 있었을 때 어찌 그리 반가운 건지. 그래서 중독이란 게 무섭다.
나에겐 광고도 그렇다. 어려서부터 좋아했던 광고들을 떠올려보면 유행어처럼 입에 붙은 광고들만 기억 속에 남아있다. "따봉!"이 가장 대표적인데 사실 난 당시 따봉이란 말이 싫었다. 여기도 따봉, 저기도 따봉, 가까스로 등교시간에 맞춰 교실에 도착한 아이들도 따봉, 시험성적 잘 나온 아이들은 그래서 또 따봉, 그렇게 정말 다들 따봉에 중독된 노예들이라 경멸하며 지냈다.
그런데 정작 부모님이 첫 번째 IBM-XT컴퓨터를 사주신 날 나도 몰래 엄지손가락과 함께 내뱉은 말도 '따봉'이었다. 반복학습도 결국 중독의 한 가지 방법이었던 것. 이경규의 "자연스럽게 짜짜로니", 박중훈의 "랄라라 라거", 정우성의 "가! 가란말이야! 2프로 부족할 때"는 물론 "뭘 봐? 껌바!"같은 광고 대사는 친구들에게 수백, 수천 번도 더 썼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한없이 썰렁하지만 컨닝하려는 친구에서 '뭘 봐?' 그러면 '껌바'라고 답하는 것도 당시엔 무척 흔한 광경이었다.
광고는 세상에서 가장 짧은 단편영화라고 생각한다. 촌철살인의 아이디어와 번득이는 재치를 담아야함은 물론, 기막힌 반전까지 담을 수 있다면 최상의 광고다. 그런 점에서 요즘 내가 꽃힌 광고는 바로 '올레'다. 코믹한 반전까지 담을 수 있다면 최상의 광고다. 코믹한 반전으로 이뤄진 '와우'와 '올레'의 대구법은 '뭘봐'와 '껌바'를 영상시키고, 올레 그 자체는 바로 따봉의 연장선이지 않나. 혹자는 요즘 새로운 관광 명서로 각광받고 있는 제주도 '올레(길)' 광고가 아니냐고 호기심을 갖기도 했다.
그만큼 올레 역시 모처럼 내 입에 붙어버린 광고 문구가 됐다. 첫 인상은 '애니메이션이 왜 저리 조악해!"라고 쓴 웃음을 짓고,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듯한 할아버지의 새 아내가 된 젊은 여자의 '올레!'에 '오 대담한 광고인 걸!'하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가, 결정적으로 아내와 아들의 동반 여행에 홀로 남은 유뷰남이 '올레!'를 외칠 때 나도 모르게 따라해 버렸다.
그래서 나를 비롯한 주변 동료들은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올레를 외친다. 오늘도 그랬다. 얼마 전 편집장이 병가를 냈을 땐 그저 "와우" 정도였다가 다음 주 내내 출장이라니 이번에 다같이 "올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