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맥주 회사인 DB Breweries는 이미 포화상태였던 저탄수화물 맥주시장에 신제품을 하나 내놓게 됩니다. 하지만 시장은 이미 유명 글로벌 맥주 브랜드들의 각축장이었고, 그래서 목표는 절체절명, 살인적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문제를 고민하던 클라이언트와 대행사는 이 제품의 핵심 타깃들은 친구들과의 만남이나 파티 보다는 애인 또는 배우자와 함께 집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발견했고, 그래서 맥주를 마시면서 내 애인, 내 배우자와 함께 할 수 있는 로맨틱한 일들이 무엇일지부터 생각했다고 합니다. 또 이 브랜드는 대부분의 경쟁 저탄수화물 맥주가 지향하는 날씬, 늘씬, 건강의 클리셰에서 벗어나 저탄수화물 맥주를 마신다는 것은 나와 내 파트너를 위해 ‘로맨틱한 일’ 이라는 것을 메시지로 전달했고, 캠페인 역시 일반적인 광고가 아니라 그 로맨틱한 일들을 가사로 만든 노래, 그리고 뮤직비디오로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 로맨틱한 R&B 노래로 제작된 ‘I`m Drinking It For You’는 뉴질랜드 애플뮤직 2위에 올랐고, 뮤직비디오 시청은 5백만뷰(View), 캠페인은 뉴질랜드에서 가장 높은 광고 참여율과 리콜 통계까지 얻었습니다.
레드오션이라 생각했던 시장에서 소비자를 깊게 관찰하고, 그 속에서 남다른 포지셔닝과 색다른 캠페인 방법을 생각해냈던 브랜드… 그렇게 시장은 움직였고 우리는 이런 케이스를 통해 변하지 않는 성공 캠페인의 공식을 또 하나를 배우게 됩니다.
부산국제광고제에는 광고 캠페인뿐만 아니라 매장, 행사 등 마케팅을 위해 활용되는 다양한 비디오 콘텐츠를 수상 대상으로 하는 광범위한 개념의 카테고리 Video STAR가 있습니다. 이번 2019 부산국제광고제에서는 태국 은행 Kasikornbank의 뱅킹앱인 K-Plus의 바이럴 비디오 콘텐츠가 그랑프리를 수상했습니다.
이 비디오 콘텐츠는 태국의 많은 광고들이 그러하듯 아주 유머러스합니다. 수없이 바뀌는 여자친구의 얼굴이 아이디어의 핵심이죠. (심지어 쌍둥이, 어머니처럼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 아버지 같은 아저씨로 얼굴이 매우 다양하게 바뀝니다) 하지만 콘텐츠는 웃기는 일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다양하게 변신하는 여자친구의 모습은 수없이 업그레이드된 이 은행의 앱(App)을 상징하는 것이었고, 최후에 등장하는 여자친구의 모습은 원래 여자친구의 모습과는 영 딴판이지만 수십 번의 업그레이드를 통해 더욱강력해진 K-PLUS 뱅킹앱의 현재를 참 재미있고 직관적으로 보여줍니다.
그저 유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유머를 통해 콘텐츠의 흡수력을 높이고, 쉽고 직관적인 비유를 통해 뱅킹앱 업그레이드의 필요성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만들고자 했던 노력, 그것이 아마 이 비디오 콘텐츠가 그랑프리를 받게 된 이유 아닐까요?
FREELAND는 멸종 위기의 동물을 보호하고, 그래서 야생 동물 밀매에 반대하는 비영리 단체입니다. 그리고 태국은 전세계에서 야생 동물 밀매 시장 중 가장 수익성이 높은 곳 중 하나라고 하구요. 그래서 FREELAND는 이 캠페인을 태국에서 펼쳤습니다.
전세계 힙스터들에게 하나의 인테리어 그리고 일종의 트렌드 정도로 가벼이 여겨지고 있는 동물 박제 머리 장식의 이면을 캠페인 아이디어로 쓴 것입니다. 캠페인은 심플합니다. 동물 박제 머리 장식이 있는 벽 뒷면에 감춰진 동물의 사체 그리고 ‘THE TRUTH BEHIND THE WALL’이라는 짤막한 헤드라인을 통해 동물박제 머리 장식, 더 나아가서는 야생 동물 밀매에 대한 잔혹성을 환기시키고 행동 변화를 촉구했던 것이죠.
흔히 좋은 캠페인에는 긴 설명이 붙을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보는 순간 느껴지고, 알게 되고, 그리고 잘못된 행동을 한 번쯤 돌아보게 만들 수 있다면 그 캠페인은 분명 성공 캠페인의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 역시 장기가 필요한 사람에 비해 장기 기증자는 한참 부족한 모양입니다. 하지만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면허증을 취득할 때, 장기 기증 의사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갖게 됩니다. 장기 기증에 동의할 경우, 본인이 받을 면허증에 ‘Donor(장기 기증자)’라는 표시를 함께 받게 되거든요. 캘리포니아의 장기 기증 단체와 경찰은 이 사실을 장기 기증자 증대를 위한 공익 캠페인 아이디어로 활용했습니다.
사람들이 피하고 싶어하고 매우 공포스럽게 생각하는 교통위반 적발로 면허증을 제시하는 순간, ‘Donor(장기기증자)’인 경우 경찰에서 그 기증자가 타인의 삶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했듯, 교통 위반에 대해 훈방을 통해 한 번의 기회(Second Chance)를 더 주었던 것이었죠.
캠페인은 아주 적은 예산으로 진행됐지만 가장 공포스러운 단속의 순간, 자신이 Donor(장기기증자)라는 이유만으로 훈방될 수 있었던 당사자들은 그 고마운 경험을 잊지 않았고 그래서 그 경험은 SNS와 언론을 통해 자연스럽게 전파될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신규 장기 기증자는 전년 대비 38% 늘어났고, 이 캠페인은 캘리포니아뿐만 아니라 미국의 다른 주, 그리고 이웃 나라인 캐나다까지 전파됐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반응할 수 있는 순간을 발견해내고 나와는 무관할 것 같은 장기 기증의 가치를 직접 느낄 수 있게 만들었다는 점이 예산 한 푼 없던 이 캠페인을 세계적인 성공 캠페인으로 만든 비결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살면서 우리는 너무나 많은 숫자와 통계에 노출됩니다. 그래서 어떤 숫자는 문자 그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하고, 통계는 그 속에 담긴 참뜻을 전달하지 못한 채 아무 의미 없는 숫자의 나열에 머물고 맙니다.
미국의 NGO인 Street Grace는 미국 아동 불법 성매매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죽어버린 숫자와 통계에 의미를 부여하는 캠페인을 실시했습니다. 매년 미국 조지아주에서 일어나고 있는 아동 불법 성매매 피해자만 3,600명. 이 숫자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두 가지 아이디어를 활용했습니다.
3,600명의 아동이 얼마나 많은 숫자인지를 사람들에게 체감시키기 위해 50명이 탈 수 있는스쿨버스 72대를 캠페인에 활용했고, 영어로 동음이의어인 ‘Traffick(밀거래)’의 문제점을 환기시키기 위해 그 72대의 버스로 ‘Traffic(교통)’을 멈춰 세웠습니다.
사람들과 언론은 멈춰선 Traffic 앞에 그 숫자에 주목할 수 밖에 없었고, 길게 늘어선 스쿨버스를 보며 3,600명의 피해자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인지 몸소 실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숫자도 통계도 그리고 정보도 미디어도 넘쳐나는 시대, 사람들을 주목시키고 생각을 환기시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은 끊임없이 계속돼야 할 것 같습니다.
어느덧 세계 광고제에서는 흔히 말하는 커뮤니케이션 콘텐츠로써의 광고뿐만이 아닌 제품과 서비스 그 자체가 수상 또는 수상 후보로 오르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제품과 서비스 자체가 마케팅의 수단이 되고 소비자와 소통하는 미디어가 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번 2019 부산국제광고제(AD STARS )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올해 부산국제광고제Interactive 부분 그랑프리 수상작은 바로 시각장애인을 위한 스마트 기기인 Dot Mini였습니다.
비장애인은 상상하기 조차 힘든 시각장애인들의 일상 속 불편함을 위해 개발된 이 스마트기기는 인공지능을 통해 우리가 너무 쉽게 일상으로 접하고 있는 수 많은 콘텐츠들을 점자 로 제공하는 놀라운 기기입니다.
그렇다면 이 기기는 광고제가 아니라 MWC(Mobile World Congress) 같은 곳에 갔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이제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콘텐츠의 형태가 무궁무진해지는 시대, 미디어의 경계가 사라져가는 시대……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특정 콘텐츠가 아님을, 한정된 미디어가 아님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