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대출력 송신소 건설을 둘러싼 담론과 방송현실
한국언론학회 | 한국언론학회 | 44 pages| 2020.03.24| 파일형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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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요약
본 연구는 1950년대 중반 이후 추진되었던 국영 서울중앙방송국의 대출력 송신소 설치 사업을 둘러싼 역사적 상황과 당대 사회현실, 그리고 담론 간의 관계를 살펴봄으로써, 1950년대 한국 방송의 성격을 평가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6.25전쟁 직후 수립된 방송 복구 계획의 일환이었던 대출력 송신소 설치사업(수원송신소와 남양송신소)을 둘러싼 역사적 상황과 담론, 그리고 대출력 송신소 건립이 야기될 수 있는 국제적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한국정부의 외교교섭, 마지막으로는 대출력 송신소 설립 후 한국 방송의 변화를 살펴봄으로써, 1950년대 대출력 송신소라고 하는 방송기술적 요인과 정부의 정권적 요인이 이떻게 결합되고 있었는지를 확인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1950년대 한국방송의 성격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논의하고자 하였다. 1950년대 한국의 방송 환경을 규정했던 가장 중요한 역사적 조건 중의 하나는 동아시아에서의 ‘냉전’의 심화이다. 이승만 정부의 대출력 송신소 중심의 방송 복구 계획은 이러한 국제 정치적 맥락 속에서 스스로의 선전에 대한 욕망을 효과적으로 감출 수 있는 상징적 수단이었다. 방송 프로그램의 질적 향상과 지방으로의 네트워크 확장, 전파 기술의 진보는 모두 ‘냉전의 효과적인 수행’을 위한 수단으로서 도구적으로 이해되었다. 동아시아 냉전의 최전선이었던 한국에서는 방송 전파가 국방력의 일부이자 전파전의 핵심적인 무기로 여겨졌다. 대출력 송신소 중심의 시설 복구 계획은 당시의 낮은 수신기 보급률을 고려할 때 국내 방송 청취자들이 핵심적인 소구 대상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반면, 1956년 이후의 방송환경 변화는 한국에서 근대적 의미의 청취자가 나타날 수 있게 해주었다. 이승만 정부의 정치적인 위기는 방송 시설을 국내 공보를 위해 사용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고, 이는 방송의 역할을 급격히 변화시켰다. 여전히 방송 전파를 전쟁 수행의 수단으로 평가하는 담론이 우세했음에도, 새롭게 등장하기 시작한 청취자는 점차 방송을 대중문화 유통을 위한 매체로 바꾸어가기 시작했다. 결론적으로 볼 때, 1950년대 대출력 송신소를 건립했던 1950년대의 역사는 당대한국 방송의 복합적 성격, 즉 냉전이란 국제 정세 속에서 전파전을 위한 핵심적인 ‘무기’였고,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중요한 공보 수단이었으며, 전쟁으로 피폐해진 사람들에게 오락을 가져다 준 오락 수단이었음을 보여준다.
 
The study aims to assess the characteristics of Korean broadcasting in the 1950s by looking at the historical situation surrounding the project to set up a high power transmission station by the state-run Seoul Central Broadcasting Station since the mid-1950s, and the relationship between social reality of the time and discourses. More specifically, the government"s key factors were to confirm the historical situation and discourse surrounding the project (Suwon transmission station and Namyang transmission station), which was part of its plan to restore broadcasting stations established right after the Korean War, as well as the South Korean government"s diplomatic negotiations to resolve international disputes that could result in the construction of a high power transmission station, and finally the change of Korean broadcasting system in the 1950s. Through this, I wanted to discuss what the characteristics of Korean broadcasting was like in the 1950s. One of the most important historical conditions that defined Korea’s broadcasting environment in the 1950s is the deepening of the Cold War in East Asia. Rhee Syng-man"s government"s plan to restore broadcasting stations centered on high power transmission stations has been a symbolic means to effectively hide its desire for propaganda in this international political context. The quality improvement of broadcasting programs, the expansion of networks to rural areas, and the advancement of radio wave technology were all understood as a means to ‘effectively carry out the Cold War’. In South Korea, which was at the forefront of the Cold War in East Asia, broadcasting was seen as part of its defense capabilities and a key weapon in the war. The plan to restore facilities centered on high power transmission stations shows that local broadcasting listeners were not a key target of appeal, considering the low penetration rate of receivers at the time. On the other hand, changes in the broadcasting environment since 1956 enabled listeners to appear in Korea in a modern sense. The political crisis of Rhee"s administration has prompted the use of broadcasting facilities for domestic public information, which has drastically changed the role of broadcasting. Although the discourse still prevails in assessing radio broadcasting as a means of carrying out war, listeners who have begun to emerge anew have gradually begun to turn broadcasting into a medium for the distribution of popular culture. In conclusion, the history of the 1950s, which built a high power transmission station in the 1950s, shows the complex characteristics of broadcasting to the Republic of Korea, or the Cold War, was a key ‘weapon’ for radio warfare in the international situation, an important means of public information to ensure the legitimacy of the regime, and a means of entertainment to the war-torn people.
목차
1. 문제제기 및 연구의 시각
2. 전쟁 도구로서의 방송 전파: 출력 강화 정당화의 역사적 조건
3. 대출력 송신소 건립의 이중적 효과: 대중 미디어로서의 방송의 재등장
4. 이중적 효과의 ‘학습’과 남양송신소 건립
5.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냉전 #대출력 송신소 #방송 복구 계획 #외교교섭 #방송의 대중화 #Cold War #High Power Transmission Station #Broadcasting Recovery Plan #Diplomatic Negotiations #The Popularization of Broadcas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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