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장의 어린 잎에 대한 설렘과 기대

회사 팀 책상 위엔 이름도 모르고 키우는 작은 화분이 하나 있다. 인쇄 광고 촬영에서 만나게 된 화분인데 조금이라도 흙이 말랐다 싶으면 후드득 잎사귀들이 떨어져 내리는 통에 은근히 손이 많이 가는 아이다. 나름 열심히 관리했는데 연휴 끝나고 돌아와보니 잎사귀들이 온통 말라 비틀어져버렸다. 결국 유명을 달리했나 싶었는데 웬걸 죽어버렸다고 생각한 가지 하나에서 초록초록한 잎사귀 두 장이 고개를 내밀었다. 아직 죽지 않았다고 기어이 살아 있다고 생존 신고를 했다.
새로 잎이 돋은 화분을 위해 시작한 일이 하나 있다. 시간 날 때마다 햇볕 쪼이기. 팀의 위치가 벽 쪽에 붙어 있어 창을 찾으려면 회의실이나 중역실로 가야 한다. 불특정 다수가 드나드는 회의실보다는 중역실 쪽이 낫겠다 싶어 가끔 중역실 한 귀퉁이를 빌려 화분을 가져다 놓았다. 말라빠진 잎들을 달고 있는 이 여린 화초도 그곳에서는 금방 기운을 차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중역의 삶은 번뇌와 고독으로 가득 차 있을지라도 중역의 사무실은 넘치도록 많은 햇살과 쾌적한 공기로 가득 차 있어 그 곳에서 자라는 화분들은 늘 통통하고 기름지게 살이 올라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중역실’하면 떠올리게 되는 안정감 있고 평화로운 ‘온실’의 이미지는 문을 열면 가장 먼저 마주치는 (심지어는 환기까지 할 수 있는) 크고 너른 창 덕분이 아닐까.
사실 창을 낸다는 건 건축학적으로 봤을 때 그만큼의 구조적인 리스크를 안고 간다는 말과 같다. 중앙에 창을 내기 위해선 벽을 뚫어야 하고 기둥과 벽은 그것을 견뎌낼 수 있을 만큼 커지고 강해져야 한다. 그러다 보니 더 많은 재료와 기술이 들어가야 하고 건축비도 따라서 올라간다. 19세기 초 유럽에선 아예 창문의 수나 너비에 따라 세금을 매겼다고 한다. 창문을 많이 낼 수 있거나 가로로 넓게 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 돈도 많은 사람일테니까. 요즘도 유럽에 가면 건물 자체에 아예 창이 없거나 있더라도 세로로 길게 낸 경우들을 볼 수 있는데 이런 것들이 대게는 창문에 매겨지는 세금을 피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라고 한다. 창이 부 혹은 빈의 상징이었던 셈이다.
그렇게 창이 구조적인 문제를 불러오고 그로 인해 더 많은 자원과 재원을 요구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창을 내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창은 더욱 많아지고 다양해지고 화려해지고 있다. 어떻게 어느 방향으로 창을 내는가에 따라 건물의 가치가 달라지고 반지하나 한강조망권처럼 이제는 사회 계층과 계급 혹은 격차를 설명하기 위해 동원되는 단어들조차 창으로부터 비롯된 경우가 많다.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다’, ‘창 때문에 눈이 부셔서 못 살겠다’ 등 끊임없이 툴툴거리면서도 아무도 창을 떠나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창문 없이 산다고 죽는 건 아니지만 창문 없이는 인간답게 살 수 없으니 더 많은 것을 감수하고라도 창을 지키고 싶어 한다. 더 좋은 집에서 살고 싶고 더 좋은 직장에서 일하고 싶고 더 높은 위치로 올라가고 싶은 것도 어쩌면 더 큰 창, 더 좋은 창을 갖기 위한 길고 긴 투쟁이라 생각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휴그린은 50년 역사를 가진 금호석유화학이 내놓은 창호전문 브랜드이다. 처음 휴그린의 광고 캠페인을 시작하면서 가장 집중했던 부분은 이 브랜드가 다른 브랜드보다 어떤 점에서 우월한가였다. 창호 시장은 이미 수많은 경쟁 브랜드들로 채워져 있었고 오랜 시간 소비자와의 커뮤니케이션에 열을 올려왔기 때문에 비교적 후발이라고 할 수 있는 휴그린이 소비자의 구매결정고려군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남보단 나은 점을 어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바뀌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광고주의 요구는 명확했다. 광고 하루 이틀 하고 말 거 아니니 휴그린이라는 브랜드 가치를 쌓아 나가는 첫 단계라 생각할 것. 브랜드 가치를 쌓아가는 아주 긴 장정의 첫 단추를 꿰는 일인만큼 휴그린이 갖고 있는 창에 대한 철학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갈 것. 우리 잘난 맛으로 가득한 광고는 하고 싶지 않다는 것. 광고를 하려면 없는 장점도 만들어 달라는 것이 일반적인 광고주들의 요구라는 걸 생각해 보면 굉장히 독특한 광고주를 만난 셈이었다.
휴그린이 생각하는 창에 대한 철학은 ‘소통’이라는 한 단어로 설명된다. 닫혀 있지만 동시에 열려 있는 창. 외부의 나쁜 공기와 온도의 극심한 변화를 막아주면서도 계절의 변화와 세상의 변화엔 열려 있고 더 나아가 그 안에 사는 사람들과 밖에 있는 사람들의 삶의 연결시켜주는 우리 삶에 없어서는 안될 소통하는 존재로서의 창. 그래서 휴그린의 광고는 벽 대신 창을 내는 이유에 대해 말한다. 소중한 것들과 통하고 싶어서 결국 소통하고 싶어서라고.
창호는 굉장히 고가의 제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랜드 별 제품의 차이가 한 눈에 훅 들어오지도 않는다. 그래서 소비자들의 제품 구매 시점이 오면 브랜드에 기대게 된다. 제품의 특장점을 꽉꽉 채워 내가 얼마나 뛰어난 브랜드인가를 자랑하는 것도 분명 방법이겠지만 휴그린은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조금 다른 방법을 택했다. 조금 돌아가는 건지도 모르지만 남보다 더디 가는 듯 보일지 모르지만 이 창이 어떤 생각으로 만들어지고 있는지 무엇을 위해 만들어지고 있는지를 먼저 이야기하고 싶어한다. 창의 중요성을 아는 만큼 더 좋은 창을 갖고 싶어하는 우리의 고객들에게 휴그린은 ‘제품’이 아니라 ‘창’으로 말을 걸고 있다.
바짝 마른 잎사귀들 사이 새롭게 돋아난 잎사귀들이 보인다. 죽지 않았다며 완전히 새로운 시작일지도 모른다고 신호를 보낸다. 그 신호가 햇살이 들어오는 창으로 자꾸자꾸 화분을 옮겨 놓게 한다. 오직 창이 있어 가능한 햇볕을 먹고 창이 전해주는 바람과 에너지를 맞으며 이 아이는 더 강해질 것이다. 휴그린의 인쇄 광고 촬영에서 만나게 된 화분 하나를 키우며 그 화분이 죽었다 살아나는 기적을 바라보며 창이 가진 소통의 힘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조용한, 그러나 분명한, 그 힘이 가져오는 변화를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 – 느리게 가지만 결국은 소비자의 마음에 가 닿게 될, 긴긴 캠페인의 첫걸음을 축하해도 좋지 않을까 – 하면서 말이다.
[이주영 오리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